[채식주의자]를 한, 영, 일로 읽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온 말 중 하나가 '우리는 언제 노벨상을 타나?'였습니다. 특히 노벨문학상에 대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최인훈이나 이문열 같은 작가가 타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최인훈 선생은 이미 돌아가셨고 소설가 이문열은 젊은 날 쌓아올렸던 위상을 스스로 허물어뜨린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옆나라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오에 겐자브로가 노벨문학상을 탄 것을 부러워하긴 해도 그 상을 타기 위해 그들처럼 번역에 제대로 힘을 쏟거나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은 게을리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엔 다행히 고은이나 황석영 같은 작가들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만약 그 추세를 몰아 고은이 덜컥 수상자가 되어버렸다면 상을 주는 스웨덴 한림원이나 받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죄다 곤혹스러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들려 온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은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오매불망 노벨상만 바라보고 있던 우리들에게 살만 루시디도 타고 가즈오 이시구로도 탄 맨부커상을, 그것도 오르한 파묵 같은 쟁쟁한 작가들을 제치고 한강이 수상을 했다는 소식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지요. 저는 그 뉴스를 접하고서야 진작에 사놓고 읽지는 못했던 한강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를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은 벌써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또 다른 역작 [소년이 온다]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0년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기발한 방식으로 현장에 밀착하면서도 가슴 서늘하게 그리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그런데 [채식주의자]는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고 브래지어도 풀어버린채 채식주의자가 된 '평범했던' 여인을 통해 소년이 온다와는 전혀 다른 문제의식과 감동을 높은 예술적 성취와 함께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 아내인 윤혜자 씨와 저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과 함께 인사동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곧 미국으로 돌아가는 파우저 교수님의 배웅하는 자리였지요. 우리는 파우저 교수님의 역작 [외국어 전파담] 출간 기념 강연 시간에 나누었던 얘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파우저 교수님은 그때 한강의 [채식주의자] 얘기를 했습니다. 자신은 영어판과 일어판으로는 이미 읽었고 한글로는 아직 안 읽었는데 아마도 원작인 한글판은 영어로 쓰여진 작품과는 사뭇 느낌이 다를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문화의 차이가 번역에도 나타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날 한국어판도 읽어보시라고 제가 즉석에서 책을 한 권을 사드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3개국어로 그 작품을 다 읽은 사람은 파우저 교수님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시 가을의 술자리. 윤혜자 씨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소재로 한 강연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모국어인 영어는 물론 일어와 한국어에도 능통한 파우저 교수님이 세 나라 언어로 읽은 소설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번역의 본질을 짚어보는 특강을 해보면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파우저 교수님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구요. 마침 저와 윤혜자 씨가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 '독하다 토요일' 시즌 2가 끝나가고 있었는데 시즌 3을 시작하기 전에 오픈 특강을 한 번 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즐거운 작당이었습니다. 결국 파우저 교수님은 다음 해 봄 어느날 특강을 약속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정말로 봄이 왔고 파우저 교수님도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토요일인 2019년 5월 11일 토요일, 광화문과 서소문 사이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 모였습니다. 파우저 교수님의 특강 '[채식주의자]를 한, 영, 일로 읽다!'라는 특강을 듣기 위해서였죠. '독하다 토요일'은 회원제로 운영하는 모임이라서 늘 7~8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을 하다 헤어지곤 했는데 이 날만큼은 써클의 문을 열어 회원이 아닌 분들도 참석할 수 있게 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모처럼의 좋은 강연을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윤혜자 씨와 저는 간식을 사들고 피어선빌딩 10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오후 2시가 지나자 한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임기홍 씨나 서동현 씨, 손연영 씨, 김성희 씨 같은 기존 회원들도 있었고 예주연 씨, 콜린 마샬 씨, 김수진 씨처럼 처음 뵙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3시 10분 전쯤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먼저 윤혜자 씨가 나와 오늘 강연을 기획하게 된 이야기와 독하다 토요일이라는 모임에 대한 짧은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대여해 준 '청춘여가연구소'의 정은빈 대표가 나와 피곤하고 외로운 현대사회에 이런 장소에서 같은 관심사를 나눔으로써 사람들을 '사회적인 가족'으로 엮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짧게 코멘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제가 나가서 다시 독하다 토요일을 하게 된 이유를 시작으로 제가 요즘 토요일마다 벌이고 있는 다른 기획들(토요 식충단, 토요워킹퀸 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전 스피치가 두 번이나 있었고 파우저 교수님도 뒤에 앉아 있는 상태였기에 제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비난과 조바심의 눈초리를 의식한 저는 서둘러 이야기를 끝맺고 파우저 교수님에게 강의를 부탁드렸습니다.

파우저 교수님은 1997년에 [한국문학의 이해]라는 책을 영어로 번역하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문학이론을 번역하는 일이 드문 시기였고 그 책은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문학 사례'가 많았는데 그걸 번역하면서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Beautiful English'이라는 정의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 파우저 교수는 번역 작품도 일정한 문학성은 가지고 있어야겠지만 그게 반드시 영어권의 고전작품들 같은 품격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 - 본인은 그것을 '1인야당'이라고 표현- 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당장 한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물은 셀프' 같은 표현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파우저 교수님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3년 정도 살면서 언어를 다루고 가르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공이 문학이면서도 윤혜자 씨와 냈던 책은 인문서인 [미래시민의 조건]이었죠. 그 후에 나온 두 권의 책도 마찬가지였군요. 그러다보니 문학이나 번역에 관해 이야기를 듣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파 교수님(트위터 시절부터 유명했던 그의 애칭)은 '오바마 케어' 가입 안내서나 세금 보고서 같은 글을 번역할 때는 문학성이 필요 없지만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는 정확성과 더불어 문학성도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 수상 수락연설에서 읽었던 유명한 글 - [설국]으로 먼저 노벨상을 탔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수상소감을 끌어와서 더 화제였죠 - '일본은 회색지대다'라는 말처럼 번역도 정확성과 문학성이 조화를 이루어야지 극단적인 논쟁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설국]의 첫 문장을 예로 들었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우리는 한글로 먼저 읽어 그 뜻을 파악하고 일어, 영어로 된 문장들을 차례로 살펴보았습니다. 파 교수님이 뭔가 번역에 이상한 게 없느냐고 물으니 당장 '눈의 고장'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반응이 튀어나왔습니다. 국경이라는 말의 뜻도 애매하다는 질문이 이어졌구요. 파 교수님은 일단 에도시대에 막부 별로 나뉘어져 있던 일본 지역의 역사를 이해해야 '국경'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비롯해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는 표현이 어떤 풍경을 얘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고 그런 저런 사정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우리말이나 일어에 비해 영어로 된 문장에서는 '드라마'가 사라지고 건조한 묘사만 남는 특징이 있음도 지적했습니다. 이는 번역 언어로 사용될 때 각각의 언어가 갖는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예였습니다. 파 교수는 '밥상이 들어왔다'라는 문장이 영어로 번역될 때는 과연 어떤 문장이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서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영어로 하면 식탁이 방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이 연상되어서였죠. "형이 술을 천천히 마셨다."라고 말할 경우도 형을 'Brother'라고 써야할지 'hyeong'이라고 써야할지 고민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Deborah Smith의 '오역 논쟁'에 대해 얘기를 꺼냈습니다.

드보라 스미스는 교수가 아닌 전문 번역가라는 점이 특이한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그것과는 상관 없이 소설 내용 전체를 너무 '영국화 했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고 이는 번역자 자신도 어느 정도 시인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백 퍼센트 정확한 번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결국 번역이란 것은 어느 정도 '창의적'이어야 함을 주장했는데 파 교수는 그에 대해 뭐라 말하기 힘든 입장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미국 출신의 백인 남성인 파우저 교수가 드보라의 편을 들면 역시 백인은 어쩔 수 없어, 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고 반대파의 입장에 서면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같이 번역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콜린 마샬 씨를 괜히 끌어들여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파 교수의 지목을 받은 콜린 마샬 씨는 '한국어로 쓰여 있는 소설에서는 아내를 약간 비하하는 듯한 남편의 심리가 잘 나타나 있는데 번역을 하면서 그런 뉘앙스들이 다 사라진 게 아닌가'라는 날카로운 의견 및 질문을 펼쳤고 파 교수도 맞다고 하며 그래서 "여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여기서?"라는 문장을 영어로 옮겼을 때 여보를 'Darling'이라고 옮긴 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똑같은 'Darling'이라도 맥락에 따라서는 사랑스럽게 들리기도 하고 비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는 것이죠(일어로는 마초적인 게 느껴지고 영어로는 신사가, 한국어로는 교양 있는 남편이 느껴진다 했습니다). 영국식과 미국식을 오가며 목소리 연기를 펼치는 파 교수님 덕분에 강의를 듣던 사람들이 모두 깔깔깔 웃었고 '달링'은 단박에 우리들만의 유행어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no'라는 단순한 단어 하나에 무려 88개의 각각 다른 의미가 들어 있다는 학계의 보고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파 교수는 어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가르치는 게 정말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던 교수법에 대한 얘기도 들려주었습니다. 말끝을 '~해요'"로 처리하는 이른바 '욘사마적 교과서'라고 한다나요. 아무튼 비빕밥과 'Mixed Rice'는 다른 것인데 파 교수는 어중간하게 타협을 하느니 차라리 'Bibimbab'이라 표기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보라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논쟁을 다룬 뉴요커의 기사를 인용하며 번역문장을 왜 읽느냐로까지 생각의 지평을 넓혀갔습니다. 자기는 문학을 좀 가벼운 느낌으로 즐기고 싶은데 요즘 미국에서는 다소 '있어보이려는 의도' 때문에 문학이 소비되기도 함을 얘기했습니다('Political Correct).

강의가 마무리될 때쯤 소설 등단 준비를 하고 있는 김하늬 씨가 '드보라 스미스가 번역을 할 때 한국적인 특수 상황 - 남편의 지나친 여성 비하, 다른 사람들의 억압적 강요 - 들을 모두 약화시킴으로써 오히려 서양 심사위원들이 선택당하기 쉽게 만든 것은 아닐까?'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라 보충 질문을 더했습니다. 번역자가 작품을 그토록 두리뭉실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강이라는 작가가 쓴 원작의 힘이 너무 강력해서 수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고. 그림을 그리는 이창희 씨는 더 나아가 드보라가 수상을 하지 못할까봐 의도적으로 작품을 '훼손'한 것은 아닐까 의심하면서 만약에 그렇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파 교수는 그 질문들에 어느 정도 동감하면서도 모르긴 몰라도 작가가 여성이라 그에 대한 배려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슬쩍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이라는 게 항상 시대성을 반영하기 마련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자꾸 드보라를 공격하는 듯한 분위기로 흐르니 김하늬 씨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번역 때문에 좋았던 점에 대해서도 살펴보자'라는 제안을 했고 파 교수가 그 애기를 받아서 번역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 도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Good English'라는 명목 하에 원작을 바꾸어 '좋은 작품'으로 만드는 번역은 어떠한 경우에도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마지막엔 이창희 씨의 소개로 왔다는 미술학 전공자 황규원 씨가 파 교수에게 작품을 세 언어로 모두 읽은 사람으로써 언어별로 그려지는 그림이 어떻게 다르던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강의였고 수강생들의 열의도 대단했습니다. 보통 강의가 시작되고 시간이 좀 흐르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이날 모인 사람들은 끝나는 순간까지 단 한 사람도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고 모두 반짝이는 눈으로 강의를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강의 중간 PPT 화면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다 카메라로 찍어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하나쯤 있기 마련인데 이날은 열심히 필기는 해도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서 기뻤습니다.

뒷풀이는 윤혜자 씨가 추천을 했는데 저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서대문의 '고향식당'이라는 음식점이었습니다. 가게는 오래되어서 좁고 지저분했지만 음식만큼은 정말 맛있는 곳입니다. 특히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담근 김치가 일품이고 제육볶음도 무시무시하게 두꺼운 곳이었습니다. 총 13명이 앉아 술과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일어섰는데 일인 당 1만6천 원밖에 나오지 않아서 모두들 깜짝 놀랐다는 후문입니다. 음식점을 나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 파 교수님을 비롯한 몇몇은 다시 버스를 타고 성북동으로 이동해 '성북동 만섬포차'에서 세꼬시와 계란말이 등등을 시켜 이차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좋은 강의와 좋은 청중이 만나 서로 행복해했던 밤이었습니다. 윤혜자 씨와 파 교수님은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즉석에서 뭔가 또 모종의 일을 꾸몄는데, 아직은 발설할 단계가 아니므로 당분간은 비밀에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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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요일에 만나서 괜히 걷다가 헤어지는 모임 '토요WalkingQueen'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번엔 남산길을 코스로 정했습니다. 벚꽃은 다음 주가 절정일 것 같지만 저희가 그때는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이번 주로 정한 것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침에 영화 [약속]을 보러 일찍 명동으로 나갔습니다. 전도연과 설경구가 또 얼마나 사람들을 울릴까 걱정을 하면서 갔고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저와 아내 모두 엄청나게 눈물을 흘렸지만 결론적으로 영화를 보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시 이후의 개인적 삶을 정면으로 다룬 극영화이다 보니 접근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러웠으나 시나리오와 연기에서 과잉이나 쓸 데 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이 제작을 맡았고 감독인 이종언도 이전 이창동의 작품에서 일을 했던 인물이라 믿음이 가기도 했었죠.

영화 상영 시간 내내 코를 풀어내며 우느라 힘이 쪽 빠진 저희 부부는 충무로의 단골집인 '사랑방 칼국수'에 가서 닭백숙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동대입구 태극당에 가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영화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오후 두 시 정각에 오늘 처음 참여하는 이창희 씨가 오셨습니다. 저와 페친이신데 그림을 그리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유화를 그리신답니다. 곧이어 채윤정 씨가 도착해서 함께 나가 걷기 시작했습니다. 국립극장 쪽으로 올라가 남산을 한 바퀴 도는 코스였습니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날이 잔뜩 흐렸지만 그래도 봄을 맞아 여기저기서 피어난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들의 기운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꽃들의 아름다움과 싱그러움을 만끽하면서 차가 없는 남산길을 걸었습니다.

이창희 씨는 많이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나오셨다고 했고 저희는 잘 오셨다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자기는 나무와 숲이 많은 곳으로 오면 후각이 날카로워진다고 하며 덕분에 식물들의 냄새를 많이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했습니다. 채윤정 씨도 조금 귀찮았었는데 막상 나오니 너무 좋다고 하며 활기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세 시가 넘으니 비가 후두득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저, 채윤정 씨는 윈드브레이커의 모자를 뒤집어썼고 이창희 씨는 가방에서 고장 난 우산을 꺼내 썼습니다. 걷기 힘들 정도의 비는 아니라서 다행이었습니다. 한남동 쪽을 돌아 다시 동대입구 쪽으로 내려와 걷기를 멈추고 평안도집에 가서 족발 대자를 시켰습니다. 제가 소맥을 세 잔 만들어 돌렸더니(요즘 금주 중인 윤혜자 씨는 물을 마셨습니다) 다들 맛있다고 하며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배가 부르지만 계속 음식이 들어가는 게 신기하다는 뻔뻔한 얘기를 하면서 막국수와 빈대떡까지 시켜 먹었습니다. 술이든 음식이든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일어난 저희는 바로 옆에 있는 '달콤커피'에 가서 커피도 한 잔씩 마셨습니다. 이창희 씨가 창밖을 바라보며 비가 오니 참 좋다고 했고 채윤정 씨가 자기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졸지에 소녀가 된 세 여성과 함께 이런저런 감성 수다를 떨다가 족발 값 및 커피값을 N분의 1로 나누어 주고받음 뒤 헤어졌습니다. 아무런 목적이나 이슈 없이 그냥 내키는 사람들끼리 토요일에 만나 걷는 게 생각보다 즐겁습니다. 다음 토요워킹퀸엔 또 어떤 분들이 함께 하실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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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이런 얘기는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또 수영복을 잃어버렸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잃어버린 건 어제 점심때일 것이다. 20분 간의 자유수영을 서둘러 마치고 나온다는 게 수영복과 수영모자를 탈수기에 그냥 넣고 나온 모양이다. 하얀색 수영모자도 함께 안 보였다. 옷을 다 벗고 라커를 잠그고 샤워실로 들어가다 보니 아쿠아백이 지나치게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백을 열어보니 수영복과 모자가 없었다. 다행히 모자는 전에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검은색이 하나 남아 있었다. 청소하시는 아저씨와 함께 탈의실 여기저기를 찾아보았지만 내 분실물은 보이지 않았다. 수업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수영복이 없으니 풀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청바지와 반팔 티셔츠만 다시 챙겨입고 매점으로 갔다. 매점 아줌마가 또 반가워하면 어떡하나 약간 걱정을 하며 갔는데 왠일인지 돌연 처음 보는 척을 하시는 것이었다.

 

성준) 사장님, 수영복 하나 주세요. 

아줌) 수영복이요? 날씬허시네. 95 입으슈.

 

아줌마가 행거에 걸린 수영복을 손으로 훑다가 점점 왼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왼쪽은 비싼 쪽이다. 이 아줌마가 또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는구나. 나는 얼른 아줌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성준) 저렴한 걸로 주세요!

아줌) 저렴한 거라...마침 저렴하면서도 좋은 게 하나 있는데!

 

아줌마가 중간쯤에서 까만색 수영복을 하나 꺼내보였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얼른 달라고 했다. 아줌마가 내 카드를 그으러 간 사이 내가 가격표 플라스틱 줄을 가위로 끊으려다가 가격을 확인하고 놀라 소리를 또 질렀다.

 

성준) 10,3000원이요...?

아줌) 70프로 할인이에요.

 

성준) 70프로 할인이라구요? 그러면...

아줌) 아니, 30프로 할인. 70프로만 받는다구.

 

성준) 아, 네.

아줌) 더 비싼 것도 있는데.

성준) 아뇨. 됐어요.

 

아줌마와 더 신경전을 벌이기 싫어서 나는 얼른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새 수영복을 입고 열심히 수영을 했더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옷을 갈아입고 출근을 하는데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길래 열어보니 국민카드 사용금액 72,000원이 찍혀 있었다. 아줌마가 계산은 정확한 분이네. 아침부터 선량한 아줌마를 도와드린 것 같아서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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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김굿을 보려고 휴가를 내고 내려온 진도. 이게 무슨 복인지 아내와 함께 요즘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쁜 고수(북치는 이) 태영 씨의 집으로 와서 먹고 마시며 노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어젯밤에도 간재미무침, 병어찜 그리고 산낙지 안주에 검정찹쌀홍주로 호강을 했는데 모텔에서 자고 일어나 또다시 찾아온 우리 부부에게 어머님이 차려주신 아침 밥상은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는 진수성찬입니다. 메인 반찬인 보리굴비와 조기는 물론 곱창김무침, 멸치볶음, 갓김치, 그리고 가시리국까지 어느 하나 맛없는 게 없습니다. 이 정도 밥과 반찬만 매일 보장된다면 수감생활도 가능하겠다고 얘기했더니 다들 와하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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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하다 토요일 - 황석영의 <손님>을 읽던 날

봄이 서서히 오고 있습니다. 차갑기만 하던 보도블럭이 점점 녹고는 있지만 아직도 바람은 차갑기만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퍽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이 퍽퍽하든 어떻든 책을 읽는 소소한 즐거움은 계속되어야겠지요. 2019년 2월 16일 토요일에 서소문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서 讀하다토요일 2기 네 번째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에 함께 읽을 책은 황석영의 <손님>이었습니다. 이 책을 예전에 꼼꼼히 다 읽고 이번에 또 한 번 읽은 저는 책상 앞에 앉아서 전날 봤던 영화 <가버나움>에 대한 리뷰를 스마트폰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윤혜자 씨와 제가 오는 길에 빵을 좀 사왔는데 조금 늦게 온 김인혜 씨도 홍제시장에서 샀다며 순대와 떢볶이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래서 다들 기뿐 마음으로 빵과 떢볶이 순대를 먹으며 책을 읽었습니다.

<손님>은 6.25사변 때 좌익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벌인 우리 민족들끼리의 살육전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사는 류요한이라는 목사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소설엔 특이하게도 유령들이 등장하죠. 1950년 경에 황해도에서 억울하게 죽은 동네 머슴 이찌로, 순남이 아저씨 그리고 얼마 전에 미국에서 죽은 류요한의 형의 류요섭 등이 수십 년만에 고향땅 황해도로 향하는 류요섭의 여행에 동행하며 대화를 주고받음으로써 뒤늦은 살풀이굿을 펼치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은 임기홍 씨의 첫 느낌은 '어렵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책 내용이 너무 생소하고 형식이 특이해서 그런 면도 있었지만 우리가 전혀 모르던 내용이라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전쟁 때 여기저기서 불행한 일이 있었다는 건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북한에서 그런 학살이 있었다는 건 왜 의심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자책이 일었던 것입니다. 우선은 반공교육의 폐해가 아닐까 생각했다며 자신은 황석영의 소설은 처음인데 아마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 책도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윗세대들이 어떡하든 자식들에게 이 얘기를 안 하려 한 것은 어쩌면 떳떳하지 못한 역사에 대한 공범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 책에는 우리 세대가 왜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고 합니다. 뒤늦게라도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미워하거나 알고나 당하자, 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죠.

윤혜자 씨는 우리 모임에서 가장 젊은 김하늬 씨의 소감이 가장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반공포스터를 그리고 교련이나 간호교육 따위를 받은 세대지만 이십 대인 김하늬 씨는 그런 분위기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김하늬 씨는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자기 취향도 아니고 잘 모르는 이야기라 쉽게 공감하기 힘들었다면서 민족의 비극이라기보다는 진영간의 다툼이라는 면에서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너무 슬프고 잔인한 이야기에 할 말을 잃게 되지만 따져보면 이권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하는 냉정한 시각이 발동했던 것입니다. 유령들과이 서로 대화하면서 화해에 이르는 모습들에도 쉽게 공감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게 바로 씻김굿 아니겠느냐고 했지만 이승에서 서로 실컷 싸우다가 내세에 이르러 겨우 화해하고는 다 잘 될 거야, 라고 하는 건 종교든 정치든 자기 편한 대로 갖다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동현 씨는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읽었던 소설가들에 비하면 '헤비급 선수'를 만난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레벨이 다르다는 것이죠. 충분히 공감할 만한 소감이었습니다. 끝까지 읽다보니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도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맑스주의와 기독교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이땅에 들어와서 얼마나 큰 격랑을 만들어냈는지 절절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손님'이라는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었습니다.

김인혜 씨는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온 게 황해도였고 당시 젊은이들이 기독교와 함께 일본에서 자생했던 사회주의와도 만나게 되면서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더 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차라리 조선시대에 농지개혁을 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지 않을까 하는 흥미로운 시각도 내보였습니다. 윤혜자 씨가 황석영의 <손님>을 읽으면서 현기영의 <순이삼촌>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 얘기들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이병주의 <지리산>등에서도 맥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얘기였습니다. 한집에 사는 저와 윤혜자 씨는 이번에 한 권의 책을 번갈아 읽었는데 각자 읽으며 그은 밑줄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해서 누가 어떤 구절에 밑줄을 그었는지 따져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근현대사에 대한 교육을 수박 겉핧기 식으로 배운 것에 대한 분노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당신에 대해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김하늬 씨는 '어제 <오이디프스>와 <안티고네>를 읽었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나보다는 작가가 어떤 입장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나를 더 생각하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입장에 치우칠 수밖에 없으니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불편해도 할 수 없다. 그것이 작가에게 필요한 기능 중 하나 아니겠느냐'라고 말했지만 쉽게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김하늬 씨가 지난 목, 금, 그리고 토요일인 오늘까지 특정 종교에 시달린 사연에 대해 얘기하다가 얼마 전 윤혜자 씨가 스타벅스에서 만난 - 남녀가 마주 앉아 역사와 신념에 대한 얘기를 진지하게 하다가 특정 종교에 대한 충고까지 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 -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학교 선생님인 임기홍 씨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 중 만났던 여호와의증인, JMS, 통일교, 신천지 등등의 다채로운 종교인 경험에 대해 얘기하면서 배가 또다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제 모임을 끝내고 애프터를 하러 갈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겠죠.

이차는 서울역 근처에 있는 닭한마리집으로 갔었고 삼차는 또 근처에 있는 작은 술집(이름이 생각 안 납니다)으로 가서 배가 터지게 술과 안주를 먹었습니다. 다음 달엔 정지돈의 소설집 [건축이냐 햑명이냐]를 읽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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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나 괜히 걷다가 헤어지는 모임 '토요워킹퀸'이 열리는 날이었는데 오전에 급하게 정리해 넘겨야할 일이 있어서 나는 정시 출발을 하지 못하고 아내만 먼저 나갔다. 열두 시쯤 겨우 일을 마치고 나가 어제의 중간기점인 마장역 근처 '황귀닭곰탕'에서 윤정, 동현, 하늬 등 멤버들을 만났다. 이곳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기사식당인데 닭백반, 닭곰탕, 닭껍질, 닭껍질무침 등 메뉴들이 세분화 되어 있고 가격도 아주 싸다. 남대문 갈치골목의 '진미닭집'의 포스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훌륭한 닭요리집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닭껍질 요리를 시켰고 닭백반을 시킨 아내가 닭껍질무침도 하나 시켰다.

"닭껍질을 보니까 캐서린 비글로의 영화 <폭풍속으로>가 생각나네."

내가 이렇게 말을 꺼내자 아내가 "거기서 키애누 리브스가 얼마나 멋있게 나오던지." 라고 말을 받았다. 키애누 리브스와 패트릭 스웨이지 둘 다 너무나 멋있게 나오던 끝내주는 오락영화였다고 다들 그 작품을 추억했다. "거기서 키애누 리브스가 FBI 사무실을 걸어가면서 선배에게 이런 말을 하거든. 저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닭껍질도 안 먹어요. 그래서 어, 저놈들도 닭껍질은 몸에 안 좋다고 조심하는 모양이구나 생각했지."

그러자 듣고 있던 윤정이 마지막에 키애누 리브스가 FBI 신분증을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 멋있었다고 말했다. "그 장면하고 똑 같은 게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영화에 나와. 하트로 나오던 티모시 보텀스가 마지막에 A- 학점이 적힌 성적표를 종이비행기로 만들어 바다에 날리지. 하트는 계약법을 가르치던 킹스필드 교수의 딸과 사귀었는데 그 딸이 린지 와그너였어. <소머즈>에 나왔던."

윤정이 놀라서 묻는다.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해요? 예전에 영화 좋아하는 친구와 그 대사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고 대답하자 옆에서 동현도 말한다. 저도 <폭풍속으로>는 많이 봐서 거의 외우다시피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대사가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그런자 아내가 "오빠는 날 앉혀놓고 맨날 이런 얘기를 해. 난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라며 웃는다. 아내는 영화 제목이나 배우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이런 내가 특히 이상하고 한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아내가 못 알아 들으면 순자라도 앉혀놓고 그런 얘기를 계속 한다고 농담을 했다.

생각해보면 참 쓸 데 없는 얘기들이다. 폭풍속으로가 밥을 먹여주냐 아니면 거기서 돈이 나오냐. 그러나 나에겐 이런 실없는 얘기를 할 때가 가장 즐겁고 걱정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아무런 목적없이 흘려버리는 일종의 치유시간이라고나 할까. 늘 중요한 얘기만 하고 사는 인생은 재미 없다. 그런 면에서 요즘 내가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을 돌아보면 처참할 지경이다. 직원들과는 물론 클라이언트와 만나도 농담 한 마디 하지 않는 것이다. 농담이나 한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험신호다. 이렇게 계속 나사가 안 풀어지면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회사에서 안 되면 집에서라도 정신의 나사를 자주 풀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나저나 닭껍질을 다 먹고 다시 청계천 길을 걷느라 <폭풍속으로> 얘기를 다 하지 못했다. 사실 그 영화는 캐서린 비글로가 감독이지만 제임스 카메론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멋진 영화로 탄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의 전남편이었던 제임스 카메론은 이 영화의 제작자로서 당시 자신이 감독하던 영화보다 더 열심히 이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는 의리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 작업을 하다가 만난 여자들과 계속 결혼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건 그의 첫 영화였던 <터미네이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가지고 영화사를 돌아다니던 제임스는 게일 앤 허드라는 제작자와 만나 '감독을 하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시나리오를 파는' 담판을 지었고 내친 김에 그녀와 결혼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에이리언2> <터미네이터2> <타이타닉> <아바타> <알리타> 같은 블럭버스터 영화들로 이어지는 제임스 카메론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것도 다 쓸 데 없는 얘기이긴 하지만. 뭐,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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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아내가 길을 걷다가 모텔 간판만 나타나면 내게 던지는 농담이다. 우리는 둘 다 혼자 살던 시절에 만났으므로 처음부터 다른 연인들처럼 모텔이나 호텔에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결혼 전에도 항상 서로의 집으로 가서 자면 되었고 나중엔 아예 살림을 합쳐 살다가 결혼식을 올렸으니까. 아내는 그게 좀 아쉽다면서 툭하면 모텔에 가자는 농담을 한다. 그런 우리에게도 모텔의 추억이 꼭 세 번 있다. 


첫 번째는 결혼한 다음 해 내 생일 때였다. 그땐 어떤 마음에서였는지 이번 생일엔 친구들을 죄다 불러 모아 밤새 술을 마셔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사동의 한 술집을 예약했고 저녁 7시부터 술자리가 시작되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모이게 된 것이었다. 수십 명이 목소리를 모아 한꺼번에 건배를 외쳤고 그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고루 사랑받는 호스트로서의 뿌듯함을 감추지 않으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친구들도 다음날이 휴일이라서 그런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마음껏 술을 마시고 취했다. 술값이 좀 많이 나오겠지만 이미 취한 상태라 '뭐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라는 대범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친 듯이 술을 마시다 문득 눈을 떠보니 모텔 안이었다. 친구 영학이가 너무 취한 나를 보고 신사동의 모텔 하나를 예약한 뒤 키를 선물이라며 주고 간 것이었다. 생일선물로 모텔 키를 받아본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아내는 내 옆에 누워 간밤에 얼마나 대단한 일들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었다. 내 친구 중 어떤 여자분들은 술을 마시다 취해서 테이블 앞에서 울고불고했고 어떤 남자분들은 서로 이유도 없이 주차장에 나가 싸우더니 또 곧 화해를 하고... 나는 모텔에 누워 하하하 웃었다. 술이 안 깨서 둘 다 너무 힘이 들었다. 우리는 모텔에서 나와 기념으로 모텔 간판 사진을 찍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는 옥천에 사는 아내의 고등학교 때 친구 정미 씨에게 놀러 갔을 때였다. 정미 씨는 우리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 준 네 명 중 유일한 아내의 친구였는데 옥천에서 남편, 두 아들 들과 섬유미술 작업을 하며 살고 있었다. 정미 씨와 희관 씨, 그리고 우리 부부까지 네 명은 폐교를 개조한 정미 씨의 작업실에서 밤늦게까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정미 씨 부부는 피아노 앞의 의자에 무릎을 베고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내는 이불속에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테이블 위엔 소주는 물론 새로 딴 양주 한 병까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공기가 좋아서 여기 오면 누구나 술을 많이 마시게 돼요,라고 희관 씨가 말했다. 나도 한참을 누워있다가 나와 어찌어찌 밥을 먹고 태관 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옥천역까지 갔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역으로 들어가려는데 둘 다 너무 힘이 들고 멀미까지 나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아내가 우리 그러지 말고 모텔에 들어가서 두 시간만 자고 나오자고 했다. 역 앞에는 모텔들이 많았다. 그중 좀 깨끗해 보이는 모텔을 골라 들어가 '숏타임'을 끊었다.  방에 들어간 우리들은 샤워도 하지 않고 그대로 쓰러져 두 시간을 달게 잤다. 겨우 기운을 차린 우리들은 "모텔에 와서 또 잠만 자다 가네..."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옥천역으로 들어가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는 지난 1월 24일 성대 앞 도어스에서 술을 마시던 날이었다. 그날은 친구 문송과 술 약속이 되어 있어서 논현동에서 둘이 막 술자리를 시작하는 참이었는데 악당이반의 김영일 대표에게서 호출이 온 것이었다. 김영일 선생이 부르면 무조건 가야 한다. 우리는 당장 술자리를 걷고 광화문에 있는 전집으로 달려갔다. 김영일 선생 말고도 또 한 분의 일행이 있었다. 우리는 맛있는 생선전에 막걸리를 마시다 성대 앞 도어스로 갔다. 여기는 김영일 선생의 단골이기도 하다. 아내도 뉘 늦게 술자리에 합류해서 맥주와 양주를 마셨다. 아내 빼고는 다들 전작도 있고 해서 빠른 속도로 취해갔다. 

눈을 떠보니 또 허름한 모텔방 안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내가 어느 순간 맛이 가더니 잘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술집을 나올 때 다들 취해 있었는데 나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해서 무릎이 계속 꺾인 모양이었다. 아내는 도저히 나를 데리고 집까지 갈 자신이 없어서 눈에  띄는 3만 원짜리 모텔로 들어왔다고 한다. 방은 몹시 좁았고 새하얀 침대와 베개는 지나치게 푹신해서 몸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안 좋은 자세로 잤더니 여기저기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아팠다. 아내가 "여보, 우리 신발은 어딨지?"라고 묻길래 방문을 열어보니 옹색한 현관에 아내와 내 신발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욕실을 열어보았으나 타일이나 욕조의 상태가 너무 정 떨어져서 도저히 샤워를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일회용 칫솔로 양지만 하고 서둘러 모텔을 나왔다. 1층에 있는 객실에서 나와 현관 옆에 있는 카운터에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길래 그냥 나왔다. 우리가 성대 앞 싸구려 모텔에서 자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며 헤어졌다. 나는 곧장 회사로 가고 아내는 필라테스 선생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예전에도 물론 이성과 함께 모텔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러니 그건 아내와 만나기 전의 일이니까 숨기거나 비난을 받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내와 모텔에 갈 때마다 번번이 건전하게 잠만 자고 나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음엔 멀쩡한 정신에 모텔에 가서 반드시 아내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야 말겠다고 불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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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만들다보면 신기하게도 똑같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어제도 외국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그런 TV-CM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미켈럽이라는 맥주 브랜드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의 아마로 몬테네그로라는 위스키 브랜드인 것 같습니다. 

두 광고 다 A.I가 등장합니다. 운동이든 게임이든 심지어 악기 연주까지 인간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선보이죠. 하지만 일을 끝내고 저녁에 한 잔 하는 즐거움까지 인간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통찰을 술 브랜드와 절묘하게 엮었습니다. 

문제는 그 전개가 너무 똑같다는 것입니다. 만듦새나 스케일을 봐서는 누가 누구 것을 베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연의 일치로 그런 것이겠죠. 저도 오래 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SK텔레콤 광고를 할 때였는데 저희가 만든 광고에 나온 로봇과 비슷한 로봇이 일본 CM에도 나온 것이었습니다. 시기도 비슷했구요. 그래서 아주 곤욕을 치뤘습니다. 이 광고도 그런 경우라 여겨집니다. 지금쯤 두 회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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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갑자기 시간이 애매하게 비어서 혼자 일을 더 할까 하다가 압구정에 있는 극장으로 달려가서 거의 제목만 알고 있던 영화 [가버나움]을 보았다. 사무실에서 예매를 하고 급하게 극장 앞까지 가서 폰을 켜보니 예약이 안 되어 있었다. 휴대폰 결제를 하는 과정에서 승인번호를 넣아야 하는데 깜빡 잊고(다 했다고 생각하고) 그냥 달려온 것이었다. 자동 취소된 예매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니 상영 시작 5분 전이라 이번엔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경고문이 떴다. 취소할 생각이 없으므로 그대로 예매를 진행했다. 사용할 수 있었던 오천 원 할인권도 포기하고 급하게 만이천 원에 예약을 했다.

유럽 어디에선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죄목으로 부모를 고발한 아이가 실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영화는 그 이야기에서 착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에서 사는 소년의 이야기인데 누군가(소년의 말에 의하면 '개새끼')를 찌른 사건 때문에 열린 재판정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부모들이 지나친 생활고에 시달리느라 아이들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친 노동과 장사 등에 시달리는 소년. 길거리 캐스팅이었다는 소년의 연기가 너무나 뛰어나고 빈민과 불법체류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거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으로 가슴 미어지게 펼쳐진다.

살인미수 소년범이 되어 수용시설에 있던 소년이 TV생방송에 전화를 해서 자신을 낳은 부모와 세상을 저주하는 장면은 짜릿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소년이 새로 증명서를 얻는 과정에서 짓는 미소나 체포되었던 불법체류자 여성이(그동안 소년이 돌봐주었던) 자신의 아이를 다시 만나는 장면 등은 그동안 켜켜히 쌓아놓은 비극을 너무 가볍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나와 '가버나움'의 뜻에 대해 검색해보니 구약성서에 언급되었던 어떤 도시를 말하는 것 같았으나 현재는 '지옥 같은 곳'이란 의미로도 쓰이고 있었다. 마지막에 이 영화를 계기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소년을 돕는 '가버나움 재단'도 생겼다는 자막이 떴다. 영화가 현실을 바꾸어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건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나이에 어른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한 소년 배우에 대한 감탄과 아랍지역의 여성 감독이 일구어 낸 묵직한 주제의식이 칸에서 15분간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관객수 십만이 넘었다고 하니 일단 흥행 성공이라 다행이다. 다른 건 몰라도 소년의 리얼한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하니까.

어린 나이에 어른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한 소년 배우에 대한 감탄과 아랍지역의 여성 감독이 일구어 낸 묵직한 주제의식이 칸에서 15분간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관객수 십만이 넘었다고 하니 일단 흥행 성공이라 다행이다. 다른 건 몰라도 소년의 리얼한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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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길 끝에 이르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대단한 감동이 있든지 아니면 대단한 허무라도 있든지. 영화 <황해>로 남우주연상을 이 년 연속 타게 된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무심코 내뱉었던 다짐 때문에 졸지에 577킬로미터  국토 대장정을 하게 된 배우 하정우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장정을 마치고 나서 그의 생각이 좀 바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더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했을까. 어처피 끝에 가서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텐데." 

우리는 마음이 심란하고 소란할 때 그 마음을 어떻게 하기보다는 몸을 어떻게 해보는 경우가 더 많다. '나'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의 '성동격서'라고나 할까. 몸을 괴롭히다 보면 뜻밖에 마음이 맑아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몸의 움직임 중 가장 쉬운 것은 걷기, 즉 산책이다. 걸으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가라앉는 경험을 많이 해서 나도 매일 오후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하정우의 경우는 그 산책의 강도가 남다르다. <아가씨> 촬영 때는 출근길 편도 1만6천보를 매일 걸어놓고는 '이 정도면 상쾌하다'라고 할 정도이니.  

연예인이나정치인이 쓴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 남들이 써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정우의 책은 읽어보고 싶었다. '어차피 길 끝에 가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왜 걷는 동안 나는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없었을까?' 같은 통찰은 걷는 자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매일매일 꾸준히 걸어다는 사람이라면 알록달록하고 재치있는 글을 여기저기 깔아놓기 보다는 인생의 본질을 바라보는 지긋한 시선이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집으로 오는 길에 이 책을 샀다. 이제 50페이지쯤 읽었다. 매일매일 '걷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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