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점. 헌혈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골수 기증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골수 기증을 하려면 우선 채혈을 해야 하고 또 골수 등록도 해야 한다.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일반인들은 하고 싶어도 어디서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헬프 레메디스라는 제약회사는 피부를 베어 피가 날 때 상처에 붙이는 밴드 패키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다. 만약에 막연하게라도 평소에 골수 기증을 원하던 사람이 이 키트를 가지고 있다가 상처가 나면, 반창고를 바르기 전 면봉에 피를 묻혀 동봉된 수신자 부담 봉투에 넣어 이것을 골수 기증 단체(DKMS)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채혈과 골수 등록이 한 번에 이뤄지는 셈이다. 단순명쾌하다. 


이 키트 런칭 후, 골수 기증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3배나 늘은 것은 물론, 일반 밴드 키트보다 1,900%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헬프 레메디스의 ‘Help I want to save a life’ 캠페인은 2011년 칸 광고제에서 제품 분야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아이디어들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더구나 제약회사에서 이런 아이디어로 이런 캠페인을 펼치다니.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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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 토요일자 신문을 읽었습니다. 신동호 논설위원이 쓴, 2001년도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탔던 [버스44]라는 중국의 단편영화 이야기를 다룬 칼럼이었죠. 세월호 참사에 일그러진 우리들의 현실 인식이 겹치는 기발한 영화였습니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도 이 영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더군요. 짧은 영화니까 다들 한 번씩 보셨으면 해서 공유합니다. 신문칼럼도 함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92010555&code=9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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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병에는 어째서 코르크 마개가 달려 있을까? 새로운 인조 코르크 마개는 대체로 진짜 코르크보다 따기도 쉽고 오래가며 잘 부서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 병의 멋진 와인을 고를 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병을 따기 쉬우냐가 아니다. 그 소박하고 전원적인 느낌이 중요한 것이다.  

- 세스 고딘의 [보랏빛소가 온다2] 중에서 



효율만 따지며 사는 게 제일 재미없고 병신스런 짓이다. 

그걸 아는 내 친구들은 바보 같은 놈들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서로 친하게 지낸다. 코르크마개 같은 놈들이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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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식이 형이 어제 혜자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노래 만드는 것밖에 없어서. 급하게 한 번 만들어 봤어..." 


세월호 침몰 사건을 매일 뉴스로 지켜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 애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기성 가수들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보다는 그냥 형이 일단 거칠게 부르고 다른 사람들도 자유롭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고, 형은 그렇게 했다. 


근식이 형은 어렸을 때부터 알던 동네 형인데 예전에 '새들처럼',  '너무 늦었잖아요',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같은 변진섭의 히트곡들을 많이 만들었던 작곡가다. 상업적 노래만 만들던 작곡가지만 이 노래만큼은 일기 쓰듯 반성문 쓰듯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만들었다고 한다. 


고마워, 근식이 형. 어제 전화로 들려주던 노래를 급하게 녹음까지 하느라 애썼네...




(더 많은 사람들이 부를 수 있도록 악보를 붙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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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는 없을까? 비슷한 시기인 2001년 10월3일에 방영된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은, 새 시즌이 시작되는 날 정규 에피소드 대신 급하게 제작해서 만든 외전 격 에피소드인 ‘이삭과 이슈마엘’을 방영했다. 원래 내용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독립 에피소드였던 ‘이삭과 이슈마엘’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오랜 반목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슬람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이슬람 신도와 이슬람 근본주의자 사이의 간극은, 평범한 기독교 신도와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집단 케이케이케이(KKK) 사이의 간극과 같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고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탈레반이 지목되면서 전미에 이슬람 신도들에 대한 증오가 들불처럼 번지던 시점에, <웨스트윙>은 무분별한 증오를 멈추자는 제법 용감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오프닝에 출연자들이 등장해 사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위로하며, 평소와는 달리 배우들의 크레디트 대신 생존자 및 구조자들을 위한 모금 번호를 안내하는 것은 덤이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634565.html



지상파 방송이 예능프로그램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인양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벌써 TV 속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이 폭력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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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고지대에 자리한 부탄은 2013 기준으로 인구 73만명, 1인당 국민소득 2863달러로 작고 저발전된 나라의 전형이다. 하지만 유럽 신경제재단(NEF)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부탄은 국민의 97%나는 행복하다 답변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같은 조사에서 143개국 68위라는 기대이하의 저조한 행복도를 기록했다.


부탄의 국왕은 취임 이래국민소득(GDP) 아니라 국민행복(GNH) 기초해 나라를 통치하겠다 공언해 왔다. 부탄은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인도가 경제성장에 몰입하는 와중에도 심리적 웰빙, 생태계 보호 국민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일에 주력해 왔다.



한편 OECD 2012 36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63.2(110 만점)으로 하위권인 24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교육(6), 정치참여(11), 치안(12) 등에서 선전한 반면에 주거(22), 일자리(25), 환경(29), 건강(33), 일과 삶의 조화(33), 공동체 생활(35) 등에서 부진했다. 참고로 호주(87.5) 1위를 차지했고 노르웨이, 미국, 스웨덴 등이 뒤를 이었다. 더불어 일본은 21, 멕시코와 터키가 각각 35위와 36위로 최하위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252059235&code=990304



'국민행복'은 고사하고 '국민안전'도 믿을 수 없는 대한민국. 정말 괴롭고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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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다. 

짤막짤막 자서전. 

인생의 순간순간을 메모해서 
그 비망록들이 모이면 자서전이 될 것이다.  

인생은 어깨에 힘주고 얘기한다고 
대단한 게 되는 게 아니니까. 

조각조각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내가 서울에 있는 개봉관에 처음 간 것은 초등학교 5학때였다. 형과 누나가 나를 데려갔었는데 그들은 당시 인기 스타였던 크리스 미첨 주연의 [썸머타임 킬러]를 보고싶어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중학생 이상 입장 가'였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극장에 들어갈 수가 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종로2가에 있는 허리우드극장에 가서 [킹콩]을 보았다. 


나는 처음 보는 거대한 스크린과 거대한 킹콩의 스케일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당시 킹콩의 손바닥 위에 올라 앉아있던 여자가 제시카 랭이었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날부터 극장 순례가 시작되었다. 연신내에 있던 양지극장, 불광동에 있던 불광극장, 녹번동에 있던 도원극장, 서대문에 있던 신양극장 등 2류 3류 재개봉관을 찾아다니면서 '엘시드', '겨울여자', '그 여자 사람잡네',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깊은밤 깊은곳에', '소림사 12대천왕', '취권' 등등 셀 수 없을 정도의 영화를 보고 다녔다. 아마 내가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고 다니는 걸 가족들은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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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정말 많이 벌었다 치자.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게 뭔가. 인간 본능으로 들어가보면, 정말 인간이 하고 싶은 건 디지털 세상 안에 있지 않을 거다. 친구랑 놀고, 요트 타고, 책 내고, 옷 만들어 팔고, 자기 집 짓고 싶어 한다. 나는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거다. 우리 회사 미션이 ‘나중에 하고 싶은 걸 지금 한다’다.”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어, 이게 브랜딩이다. 브랜딩이 잘 되면 디자인은 거저 주워 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당 인테리어를 할 때 ‘벽 컬러를 뭐로 할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이 가게를 왜 하려는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걸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디자인은 저절로 나온다. 옷을 입을 때 ‘당신이 어떤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가’가 중요하지, ‘진한 수트가 좋은가, 밝은 수트가 좋은가’가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JOH&컴퍼니 조수용 대표 






"예를 들어 식당 인테리어를 할 때 ‘벽 컬러를 뭐로 할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이 가게를 왜 하려는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걸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디자인은 저절로 나온다."


내가 하는 일인 광고도 그렇지 않을까? 왜 하려는지를 알면 답은 쉽게 나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그 일을 왜 하는지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거짓말 하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언트도그렇고 크리에이터나 기획자들도 그렇다. 그래서 세상 대부분의 일은 더디고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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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67653





예전에 리처드 브랜슨이 쓴 책에서 ‘버진 레코드’의 이름을 지을 때 일화를 재밌게 읽은 기억인 난다. 젊었을 때 브랜슨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잔뜩 모여 하루 종일 딩굴고 어울려 노는 레코드점을 하나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레코드점 이름을 짓자고 결심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바로 ‘버진’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고 한다. 처음하는 사업이라는 뜻에서 ‘Virgin’이었지만 사실은 “근데 여기에 진짜 Virgin은 하나도 없잖아? 하하하” 하고 웃은 이유가 더 컸다고 한다. 이건 마치 예전에 들국화 형님들이 모여 새 앨범 이름을 정할 때 “도대체 ‘추억’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라고 말한 뒤 ‘추억 들국화’라는 앨범 이름을 정한 것과 마찬가지다. 


브랜슨은 60초 만에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하거나 그 아이디어가 어떨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두꺼운 보고서보다는 직감적인 본능에 더 충실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할 때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조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순간적인 판단이나 직감을 따라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나 다이슨청소기를 만든 제임스 다이슨,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은 시장조사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시장이 원하는 정답을 내놓으면 결국 ‘평균’ 제품밖에 만들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남의 말만 듣고 망설이다가 아무 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자신의 직감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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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다는 것은 일부러 돈과 시간을 내고 컴컴한 극장으로 들어가 남들이 만들어놓은 거짓말에 기꺼이 속아줄 마음을 먹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이건 좀 미친 짓인 거 같다. 그런데 얼마 전 개봉한 [그랜드 브다페스트 호텔] 같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오늘 이런 미친 짓 하길 참 잘 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해보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니 이를 또 어쩌랴. 한 번 생각해 보자. 그 옛날 남부러울 것 전혀 없고 아라비아의 왕이기도 했었던 그 자는 왜 매일밤 아름다운 샤라자드의 옷을 벗기는 대신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달라고 너드짓을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어렸을 때 잠들기 전이면 할머니에게 호랑이든 곰이든 나무꾼이든이 나오는 뻔한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매일 졸랐을까?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던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지구인들 유전자 어딘가엔 권태를 이기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거나 아니면 ‘이야기 본능’이라고 하는 의외의 요소가 찰지게 아로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이야기. 그렇다. 이야기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래서 누구든 틈만 나면 ‘이빨’을 까고 ‘구라’를 푼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놈이 하느냐에 따라, 또는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이야기의 깊이와 재미는 시시각각 달라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요즘은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듣고 보고 느끼는 공감각의 시대라 그 방법론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래서 요즘 잘 나가는 소설가나 철학자, 교수들 중에는 자신의 직업명을 제껴버리고 ‘이야기꾼’이라는 닉네임을 이름 앞에 달고싶어 안달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원한다고 다 이룰 수는 없는 법. 품새가 어설프거나 도그마적인 한계에 부딪혀 엉뚱한 길을 헤매는 수많은 중생들을 뒤로 하고 단연 괴팍한 천재로 우뚝 빛나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웨스 앤더슨이다. 그는 자신만의 강박적인 스타일과 자유로운 상상력, 복고적 화법, 강렬한 색채, 미친 속도감과 블랙유머 등을 무기로 단숨에 그 분야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엔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흥미진진한 가상 공간을 삽으로 푹 떠서 통째로 들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1930년대 동유럽의 가상국가 주브라스카 공화국에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총지배인 구스타프가 고객이자 연인이었던 마담 D의 아들에 의해 그녀의 살인범으로 몰린 뒤 ‘사과를 든 소년’이라는 비싼 그림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무자비한 암살자에게 쫓기는 것은 물론 투옥과 탈옥 등 갖은 고초를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코스처럼 두루 겪다가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누명을 벗게 되지만 그만 허무하게 사망해 버리고 그 호텔은 벨보이였던 무스타파(또는 제로)가 물려받게 된다는 코믹 환타지 역사 미스터리 모험극, 이라고 거칠게 줄거리를 요약하고 나면 그 무신경함에 분개한 나머지 나를 죽이려 드는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살인사건을 다룬 스릴러나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그 구조가 너무나 빈약하다. 더구나 코미디라고 하기엔 고급스러운 유머가 너무 많이 등장하고 역사극이라고 하긴엔 그 연대가 흐릿하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일단 너무 재밌어서 지난 몇 달 간 봤던 다른 영화들이 어느 하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호텔 부다페스트 호텔]이 관객 40만을 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2014.04.08. 경향신문 24면 하단) 소위 ‘다양성 영화’로서는 초대박을 친 것이다. 무엇이 이 영화를 이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작품으로 만들었던가. 우선 이전 웨스 앤더슨의 이전 영화들(이르테면 ‘로얄 테넌바움’이나 ‘다즐링 주식회사’, ‘문라이즈 킹덤’ 같은)에 열광했던 매니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감독의 필모그라피는 물론 카메라나 렌즈의 종류, 영화 속의 세세한 미장센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형식미를 중요시하는 시네필들의 헌신적인 입소문이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영화감독 박찬욱 등 문화계 유명인사들의 ‘투 썸즈 업’ 추천이 그 인기몰이에 더욱 불을 지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앞서는 요인들이 있으니 그것은 이 영화가 그 자체로도 참 이쁘고 경쾌하고 재밌다는 사실이다. 우선 주인공들의 말이나 행동이 엄청 빠르다. 주인공 구스타프는 물론 그의 천적인 드미트리, 벨보이 제로, 그리고 벨보이의 여자친구이자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되는 빵집 아가씨 아가사까지 이들은 한결같이 대사가 빨라서 이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듣고 있자면 흡사 우리나라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보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이나 표정들도 옛날 무성영화 시절의 배우들처럼 속도가 급하고 경쾌해서 어떤 슬픈 장면에서도 결코 완전 슬퍼지지는 않고 위험한 순간에 이르러서도 어느 정도 마음을 덜 졸이게 되는 것이다. 



옛날 옛적에 어떤 마을에…하고 고전적으로 이야기 파일을 여는 형식들은 결국 ‘이거 내가 누군가에게서 들은 얘긴데…’라는 조건이 전제됨으로써 전달자의 각색이 더 흥미진진해지는 법인데 이 영화는 그림 속의 그림이 몇 개나 겹치고 책속의 책처럼 이중삼중 구조를 가지고 있는 ‘챕터식 구조’라 이야기의 변용이나 화면비율이 만화나 동화처럼 자유롭고 또 그로 인해 어느 시점에서 카메라가 멈추든 결국 그 시절의 아련한 노스텔지어를 불러오고 마는 의외의 효과까지 거두게 된다. 


거기다가 웨스 앤더슨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하찮은 소품 정도로  취급해도 상관없다는 듯 작정하고 모여든 수많은 일급 배우들 -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시얼샤 로넌, 윌렘 데포, 애드리언 브로디, 에드워드 노튼, 주드 로, 빌 머레이, 하비 케이틀, 레아 세이두 등을 동시패션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런 대스타들을 한꺼번에 스크린 안에 담을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배우들을 병렬식 구조로 줄줄이 세우는 데 일가견이 있는 ‘대규모 앙상블’의 대가 로버트 알트먼의 생전 증언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어느 면에선 이게 더 쉬울 수도 있다고 한다. 뭐 하나가 삐끗하면 다른 쪽으로 도망갈 구석이 생기니까.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수의 등장인물들로 인한 복잡함이나 지루함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미스터리 구조를 슬쩍 끼워넣는 것이다. 이 영화의 시작도 틸다 스윈튼이 분한 마담D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살인사건이었다. 물론 이 살인사건이나 누명은 일종의 ‘맥거핀’ 효과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단순하고 사소하다. 그러나 이 모티브 덕분에 주인공들이 호텔을 벗어나 알프스 산등성이에 있는 수도원까지 올라가서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히치콕의 옛 영화를 보는 듯한 흐뭇한 착각마저 일으키게 된다. 거기다 ‘체크포인트19 교도소’ 등을 잡을때의 카메라 앵글이 보여주듯 웨스 앤더슨의 좌우대칭에 입각한 엄격한 카메라 워킹과 대담한 컬러감은 불현듯  팀 버튼의 초기 영화를 떠오르게 하고 때로는 박찬욱의 어떤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가장 큰 덕목은 방금 말한 영화들나 감독의 생산물과 어느 정도는 유사할지언정 결코 같다고는 할 수 없는 또다른 ‘향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즉, 이 영화에서 제 3의 텍스트나 영화가 떠오른다며 자랑하는 것은 영화 마니아적인 취미를 즐기는 호사가의 잘난 척일 뿐이다. 



베를린 영화제는 작년에 이 영화에 심사위원 대상을 안겼다. 아마 그들의 시상 이유에는 웨스 앤더슨의 독창적인 미학과 그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테크닉들, 유려한 음악들,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지평을 넓힌 뛰어난 기획력, 그가 영화 말미에 언급한 오스트리아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에 대한 예우까지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그럴듯한 이유보다 앞서는 것은 역시 상영관에서 엔딩 크레딧을 보고 일어서는 순간 ‘아, 이런 영화라면 한 두 번쯤은 더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즐거웠던 시간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웬만하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는 극장문을 나서지 마시길 바란다. 웨스 앤더슨은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깨알 재미’를 선사하는 성실한 감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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