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좋은 칼럼을 하나 읽었는데 오늘 다시 생각나길래 또 읽어보았습니다. 


상상은 경험의 여백에서 나온다는 생각,어린아이들이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말은 대부분 오해거나 거짓이라는 생각, 세상을 살 만큼 살았다고 자부하는 아줌마 아저씨가 되지 말자는 생각,그리고 일상에 매몰되어 상상력을 추방하지 말자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110211157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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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볼 연극 제목이 뭐랬지?” 

“반도체소녀!”


그럼 좀 심각한 내용이겠네. 저는 반도체소녀라는 말을 듣고 김옥빈이 나오는 이재용 감독의 옛날 영화 ‘다세포소녀’를 떠올렸다가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래, 가끔은 심각하고 진지한 연극도 한 편 봐줘야지. 게다가 이 연극은 아내와 같이 ‘여자연구소’ 라는 모임의 멤버로 활동 중인 연극배우 이승연 씨가 출연하는 덕분에 가게 된 거니까.



지금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문화창작집단 날이 상연하고 있는 연극 [반도체소녀]는 짐작대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처럼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 이야기입니다. 소재 자체가

슬프고 심각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한 시간 반 가량 되는 상연시간 내내 심각하기만 하면 관객들 몸이 뒤틀려서 끝까지 보기 힘들겠지요. 그래서 여기에도 재미있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일인다역’ 역을 맡은 배우 오주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연극 도중 부당해고 된 재능교육 선생님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인물 혜영 옆에 가 느닷없이 작업을 거는 연극배우 오주환은 자기가 가난한 연극배우임을 밝히며 이번에 들어간 연극 [반도체소녀]에서는 자그마치 ‘1인 14역’을 맡았다며 한탄을 하기도 합니다. 그 후에 그는 정말 신문기자, 인사담당자, 취객, 경찰, 퀵서비스 직원 등등 벼라별 변신을 거듭하며 관객들에게 깨알 웃음을 선사합니다. 어제는 판사로 분한 장면에서 맨 앞줄에 앉아 보던 저에게 와 망치를 선물하고 갔습니다 



연극은 호스피스로 일하며 ‘반도체소녀’와 인연을 맺은 간호사 정민과 그녀의 남동생 세운, 정민의 남자친구 동용, 그리고 세운의 여자친구 혜영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호스피스인 정민은 임신 3개월 상태인데 얼마 전에 정을 붙였다가 죽어버린 환자 ‘반도체소녀’가 늘 눈에 밟히고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친구 동용의 건강도 늘 걱정입니다. 삼성에 입사하는 꿈을 꾸며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 세운은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언급하며 자신의 ‘스펙쌓기’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상주의자 노교수가 못마땅하고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독려하기는커녕 사사건건 비난하며 ‘쓸데 없이’ 재능교육 1인시위나 하고 있는 여자친구 혜영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래저래 모두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든 피곤한 인생들이죠. 


연극은 그러나 섣불리 그들의 처지를 도약시켜 해피엔딩으로 이끌거나 하지 않습니다. 반도체소녀는 죽은 뒤에도 이승을 뜨지 못해 정민 곁을 맴돌고 세운은 입사시험에서 낙방을 하고 맙니다. 설상가상 몇 개월 뒤 정민과 결혼식을 올리려던 동용은 갑자기 심장이 멈춰 죽어버리구요. 교수님이나 혜영에게도 뭐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없습니다. 아마 이 연극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지금 2014년의 현실을, 그리고 우리 같은 사회 구성원들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게 없는 2015년, 2016년의 대한민국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라고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이 연극에서 교수 역을 맡은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실제로 ‘우리나라 강단의 마지막 맑시스트’로 유명한 분이더군요. 아무래도 현직 연기자가 아니라 연기는 좀 부자연스러웠지만 그 진정성을 생각하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분이었습니다. 일부 수구언론에서 이 작품에 ‘빨갱이 연극’이라는 낙인을 찍었다고 하던데, 아마 이 분의 출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이 연극이 빨갱이 연극은 아닙니다.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 얘기하면 무조건 다 빨갱이 콘텐츠입니까. 그리고 요즘 세상에 빨갱이 연극이면 또 어떻습니까. 하긴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백]도 ‘빨치산 소설’이라고 쓰는 기레기들한테는 뭐든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연극을 볼 때면 늘 신기합니다. 특히 어제처럼 소극장 연극인 경우 바로 눈 앞에서 자잘한 소도구들만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그렇습니다. 바로 제 발 앞에 놓인 기다란 직사각형의 아크릴 박스와 약간의 물, 그리고 모래만 가지고도 금방 바닷가가 되는 마술이 벌어지니까요. 불이 꺼지고 깜깜했다가 다시 들어오면 어둠 속에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배우들도 신기하구요. 배우들과 관객이 서로 짜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공법의식이 생겨 늘 즐겁습니다. 그리고 이런 ‘쓸데 없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착하게 느껴져 고마운 생각도 들고요. 


대학로 좋은 배우들의 고른 열연이 빛나는 연극이었습니다. 일단 11월 30일까지 상연한답니다. 시간 내셔서 한 번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제 아내는 이 연극을 보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함께 연극을 보고 저희에게 맛있는 청국장 등을 선물해 주신 전미옥 대표님도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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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 아유, 이름도 참 예쁘네!”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가 혜자를 보자마자 처음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혜자라는 이름이 뭐 그리 예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혜자'보다 더 예쁜 이름을 가진 여러 여성들과 사귈 때는  정작 그녀들의 발꿈치초차 구경해 본 적이 없는 어머니로서는 막내아들놈이 처음 데려온 여자의 이름이 어떻든 얼굴이 어떻든 그저 죄다 예쁠 수 밖에요. 더구나 혜자가 나온 고등학교가 호수돈여고라는 사실을 안 다음에 그 애정은 확고부동한 자부심으로 변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월남하시기 전 개성에서 호수돈여고를 다니신 걸 최대의 자랑이자 추억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었는데 나중에 그 학교가 혜자가 살던 대전으로 내려왔거든요. 

어머니는 제가 마흔 살이 넘으며서부터  ‘저러다 저 놈이 평생 결혼을 안 하고 살면 어떡하나...’ 하고 늘 걱정을 하다 가신 분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결혼을 안 하고 살 생각이 컸구요. 이상하게 저는 처음부터 혼자 사는 게 싫거나 귀찮지 않았고 또 왠지 결혼이라는 제도가 저랑 안 맞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잠깐씩 좋아하던 여자들도 늘 저랑 결혼까지 할 생각은 없는듯 보였구요. 그러다가 한참 후에 혜자라는 여자친구를 만나 미친 척하고 냅다 살림부터 차렸는데, 하루는 어머니께서 부르시더니 “너희들, 그러지 말고 결혼식을 올리는 게 어떠니?”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듬해 5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니는 그 결혼식을 못 보시고 말았죠. 그 해가 가기 전 크리스마스 즈음에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지금 살아계신다면 당신의 며느리인 혜자가 이름 말고도 이쁜 게 얼마나 많은 아이인지 아시고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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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오늘 혼자 저녁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회사 근처 음식점에 가서 오징어불고기백반을 먹으리라 결심한 나는 아침에 건성으로 읽다 휙 던져버렸던 신문 중 한 장을 꺼내 접어들고 음식점으로 갔다. 경향신문 박찬일 셰프의 칼럼을 읽었다. 


우리는 라면에 나트륨 함량에 벌벌 떨며 싱겁게 먹어야 한다고 난리를 치지만 정작 라면에 곁들여 먹는 김치나 단무지의 짠맛에 대해선 관대하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보기 편한 일부분만 보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다. 오늘 박찬일 셰프의 칼럼 제목은 ‘소금이 뭔 죄야’다. 아기들 분유의 소금 함유량을 다룬 국정감사 얘기로 시작한 이 글은 우리의 상식 속 빈곳을 강타한다. 원리는 너무 간단하다. ‘간을 본다’ 라는 표현은 모든 복잡한 요리기술을 한 마디로 대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소금의 중요성을 잘 전달해주는 말이다. 즉, 우리는 소금을 안 먹고 살 수 없다. 아주 싱겁게 먹는다는 것은 맛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밥이나 국물을 아무리 싱겁게 먹어도 과식을 하거나 반찬을 많이 먹으면 결국 그게 그거, 말짱 도루묵이다. 소금만 죄악시 할 일이 아니다. 


박찬일은 “이렇게 어떤 사안에는 뒤집어보면 다른 중요한 열쇠가 숨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라고 쓴다. 맞는 말이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뒤집어 생각을 해보면 없던 통찰력이 생긴다… 이런, 또 광고 얘기다. 이것도 병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009213218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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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나 영화는 전체에 대해 말하기보다 부분만 발췌해서 소개하는 효과적일 때가 있다.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 그런 경우 아닐까. 소설 중간쯤 나오는 노래칠갑산 대한 부분이 그렇다


노래할까요.
무재 씨가 말했다.
은교 씨는 무슨 노래 좋아하나요.
나는 칠갑산을 좋아해요.
나는 그건 부를  없어요
칠갑산을 모르나요?
알지만 부를  없어요.
왜요.
콩밭,에서 목이 메서요.
목이 메나요?
콩밭 매는 아낙네는 베적삼이 젖도록 울고 있는 데다포기마다 눈물을 심으며 밭을 매고 있다고 하고새만 우는 산마루에 홀어머니를 두고 시집와 버렸다고 하고….
그렇군요.




어찌보면 연인끼리 하기엔 너무 싱거운 얘기를 진지하게 주고받는 사람이 우습기도 하지만 가만히 그럴까 하고 천천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떤 기이한 진정성이나 순결함이 느껴지는 [百의 그림자] 작가 황정은의 문체이고 작법인 것이다목이 멘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 공감하여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철거되기 전의 세운상가쯤으로 짐작되는 소설 공간과 등장인물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짐짓 무심한 척하는 시각에 매료되었고, 그런 배경이나 시간 묘사와는 달리 감각적인 구어체를 포기한 느릿느릿한 문어체로 진행되는 사람의 대화가 단연 소설의 백미라고 느꼈다.

나중에 무재는하얀 위에 구두 발자국이라는 노래를 불러달라는 은교의 청도 거절한다. 이것도새벽에 떠나는데 강아지만 같이 갔다고 하고, 발자국만 남았다고 하고해서 목이 멘다는 것이다. 구어체로 썼다면 말도 되게 싱거울 대화가 문어체라는 옷을 입자 뭔가 자신만의 개성과 조심성을 확보하는 느낌이다. 그러니 이건 내가 평소에 애써 피하려고만 들었던 문어체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이상한 방법으로 일깨워주는 소설인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무재가 은교에게노래할까요라고 다시 묻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마 그들은 어떤 노래 하나를 가지고 이건 목이 메네 메네 하고 싱거운 소리를 늘어놓으며 가만가만 둘만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나는 소설의 이런 결말이 좋았다. 다시 노래하는 사람 덕분에 나는 전자상가에서 일하던 아저씨도, 가끔 복권 돈을 꾸러 오던 유곤 씨도, 어느 갑자기 사라져버린 오무사의 할아버지도 이상 안부를 궁금해 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뒤를 따르던 그림자가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서 벗어나 조금 뒤에서 일어나 쫓아오더라도 이상 이상하지 않은 그림이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뭔가 좋은 소설을 읽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소설에 대해 무언가 쓰지 않으면 된다는 다급한 의무감 같은 느끼고 출판사에 연락을 취했다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말미에 붙은 해설에 이런 글을 썼다.


소설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도심 한복판에 사십 전자상가가 있다. 상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내력이 하나씩 소개된다. 와중에 소설은 시스템의 비정함과 등장인물들의 선량함을 대조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과연 만한 곳인지를 묻는다. 소설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소설은 우선 은교와 무재의 사랑 이야기로 읽힌다. 그러나 사랑은 선량한 사람들의 선량함이 낳은 사랑이고 이제는 선량함을 지켜 나갈 희망이 사랑이기 때문에 소설은 윤리적인 사랑의 서사가 되었다. 소설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소설은 사려 깊은 상징들과 잊을 없는 문장들이 만들어낸, 일곱 개의 () 장시(長時). 소설을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다. 고맙다. 소설이 나온 것이 그냥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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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파솔라시도’ 여덟 개 계명밖에 없는데 어떻게 늘 새로운 노래들이 쏟아져 나올까, 가끔 생각합니다. 신기한 일이죠?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TV를 틀면 만날 그 얘기가 그 얘기일 거 같은 ‘사랑 타령’이나 '출생의 비밀'도 늘 새로운 이야기를 장착하고 새롭게 시청자들을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스 신화나 서부개척시대 이야기, 이솝 이야기 등 옛날 얘기들은 ‘스타워즈’나 ‘해리포터’ 시리즈 등으로 허구헌날 우려먹어도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인 모양입니다. 알란 파커 감독의 데뷔작인 [벅시 멜론]은 갱영화의 등장인물들을 모두 어린이로 바꿨던  작품이었죠. 히트 뮤지컬 ‘넌센스'의 남자 버전인  '넌센스 A-Men’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들이 나오는 오리지널 버전 공연장 관객 중 누군가가 즉석으로 제안했다는 이 남자 버전은 수녀 역할을 모두 남자로 바꿨을 뿐인데도 관객들에게 한층 더 높은 웃음을 선사하며 빅히트를 하는 효자상품이 됐죠. 


여기 등장인물들의 역할을 살짝 바꾼 광고가 하나 있습니다. 그동안 재미있는 극과장 광고를 많이 선보였던 콘돔 회사 트로잔의 광고입니다. 데이트를 앞두고 설레는 주인공. 그런데 데이트를 나가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고 나이 지긋한 아빠입니다. 아마도 그동안 부인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키운 것 같습니다. 거울 앞에서 그를 북돋아주는 사람은 그의 딸입니다. 아들은 현관까지 따라 나와 데이트를 응원하구요. 데이트 횟수를 묻는 아들에게 “우린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강조하는 아빠. 그러나 아들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아빠에게 슬쩍 콘돔을 챙겨주죠.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흐뭇한 장면입니다. 


이 CM을 보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라는 게 꼭 ‘맨땅에 헤딩’을 해야만 나오는 게 아니구나, 하구요.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안정효의 소설 [하얀전쟁]을 보면 월남에서 무료함에 지쳐가던 국군병사들이 정훈영화를 거꾸로 돌려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꾸로 걸어가는 군인들, 거꾸로 달려가는 자동차들...뻔하고 재미없던 보도장면들이 단지 필름을 거꾸로 돌렸다는 이유만으로 박장대소할 코미디로 변한 거죠.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라는 전유성의 책도 있었구요. 이렇게 인물 배치도나 시간만 바꿔도 단박에 새로워지는 게 세상사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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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던 아내가 전해준 전미옥 대표의 [스토리 라이팅]을 오며가며 71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요즘은 눈만 뜨면 여기저기서 '스토리텔링'에 대한 얘기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스토리텔링 또는 스토리 라이팅이 뭐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겁니다. '차별화된 비즈니스 글쓰기의 첫걸음'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에 막연한 두려움이나 답답함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스토리가 있는 글로 엮어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 자신의 글에 맞는 스토리를 찾는 법, 남의 스토리를 내 글로 끌어오는 법, 메모하는 법, 풍부하게 예시를 드는 법 등 우리가 일하면서 또는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글쓰기의 방법론들을 다채롭게 다루고 있습니다.전미옥 대표가 워낙 강의도 잘 하고 글도 쉽게 쓰는 분이라 그런지 책이 참 잘 읽히네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으려면 자기 스스로 즐겁게 살아야 한다. 자기 일상이 즐겁지 않은데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 없다. 자신을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삼는 사람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재미있게 말하는 재능이 없다거나 잘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 은근하게 나에 대한 공격을 할 때, 버럭 화부터 내지 않을 여유와 유연함이 있는가?’ 




좋은 책이 그렇듯 이 책도 이렇게 실용적인 면을 넘어 본질적이고 인문학적인 통찰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두고두고 수첩 펼치듯 자주 꺼내 읽으면 더 좋은 책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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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춘희로 나왔던 심은하의 직업이 결혼식 촬영기사였죠. 주말이면 정말 바쁜 결혼식 촬영기사. 결혼식은 두 사람에게 거의 단 한 번뿐인 행사고 또 단숨에 지나가기 때문에 혹시라도 잘못 찍게 되면 두고두고 욕을 먹는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결혼식 비디오라는 게 집들이날 당사자들에게나 재밌지 다른 손님들까지 박장대소하며 같이 볼 영화는 아니지요(그래서 저희 부부는 결혼식 비디오를 아예 찍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결혼식 비디오만으로 훌륭한 영화를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다큐멘터리 감독 덕 블록(Doug BLOCK)입니다.


뉴욕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살아가던 덕 블록은 ‘아르바이트’로 이십 년 간 결혼식 비디오를 촬영했답니다. 수입이 꽤 짭짤하고 안정된 생활이었던 모양이지요. 그런다가 어느날 자기가 비디오를 찍어준 그 사람들은 결혼식 이후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평범했던 결혼식 비디오들이 감독의 신선한 발상에 의해 새로운 영화로 탄생하는 순간이었죠. 무려 112쌍의 결혼식 고객 중 9쌍이 그에게 인터뷰 허락을 전해왔습니다. 감독은 그들을 다시 만나 결혼식 이후 각자의 스토리들을 추적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시작과 진행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우문현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들여다보는 손쉬운 방법이기도 합니다. 다큐 감독이라 그런지 예전에 찍어놓은 결혼식 비디오도 범상치가 않습니다. 더구나 십여 년 후에 만나 그들을 인터뷰한 필름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인터뷰어의 통찰력에 따라 인터뷰이들의 대답의 깊이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죠. 

젊었던 신랑 신부가 아이들을 낳고 자신의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간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흐뭇한 일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해 간 모험담이니까요.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그렇게 희망에 부풀어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 중 누군가는 결국 이혼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까지 가감없이 털어놓는 장면들이 있다는 것이죠. 이건 감독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영화에는 레즈비언 커플도 나오고 우리나라 여성도 나옵니다. ‘윤희’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재원이었는데 어느날 비행기 옆자리에서 “혹시 그 바이올린 케이스로 총기류를 운반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하던 남자와 사랑에 빠져 미국에 정착하게 된 사연이었습니다. 딸이 한국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을 줄 알았던 그녀의 부모님들은 미국에서 찍힌 결혼식 비디오에서 매우 찹찹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오랜 세월이 지나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하게 되죠. 


일부러 그렇게 고른 것은 아닐텐데 인터뷰이들이 거의 다 평범하면서도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말도 조리있게 잘들 합니다. 여유있고 유머도 풍부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천생연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천생연분은이란 없다.” 참 열려있는 생각이죠. 이건 '첫 번째 결혼’에 출연한 ‘수와 스티브 커플’에서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시작은 어이없게도 부킹클럽이었지만 지금까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잘 살고 있으니까요. 





“모두가 두 사람을 축하해 주기 위해 있는 날, 나는 그 장면들을 잡으려 거기 있었다”라는 감독의 말이 아니라도 이 영화엔 설레는 첫출발의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애쓰고 살아가는지가 진실되게 담겨 있습니다. 아이디어란 이런 것이지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서도 남과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의미를 뽑아내는 것. 그래서 덕 블록 감독을 다시 한 번 칭찬하고 싶어집니다. 저는 평소 다큐를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참 행운이었죠. 다른 분들과도 이 행운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www.eidf.org/kr 에 들어가시면 공짜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번 주까지만 상영하는 것 같습니다.이런 영화는 때를 놓치면 나중에 DVD나 ‘어둠의 경로’로도 찾기가 매우 힘드니 지금 시간을 내서 꼭 보시기 바랍니다. 러닝타임은 95분 6초. 올해 ‘EIDF 2014’ 시청자·관객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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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생 때 저희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현관에 있는 신발들의 숫자를 세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발의 숫자를 센 뒤 그걸 반으로 나눠 그 인원만큼 밥을 해놓고 출근을 하셔야 했으니까요. 그 신발들의 주인은 저의 친구일 때도 있고 제 형의 친구일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저의 친구들과 형 친구들이 밤에 집에서 마주쳐 같이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스무 살 무렵의 저와 저의 친구들은 참 무던히도 서로의 집으로 놀러 다녔습니다. 저녁에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가 “오늘은 우리집으로 갈까?”라고 하면 모두 두말없이 일어서 그 친구집으로 이차를 갔습니다. 그게 독산동의 용선이네 집일 때도 있었고 부천의 상혁이네 집일 때도 있었습니다. 구파발에 있던 저희집에도 수많은 친구와 선후배들이 다녀갔죠. 다행히 저희 어머니는 “집엔 사람들이 많이 놀러와야 한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집으로 친구들을 끌고 갈 수 있었고 다음날 느즈막히 깨어 식구들이 모두 나간 집안을 활보하다가 친구들이 씼기를 기다려 밥을 잔뜩 퍼먹고 학교로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버릇은 독립을 하고 직장생할을 하면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특히 TBWA/Korea라는 광고대행사를 다니던 2000년도 무렵 제가 살던 강남역 ‘ZOO 002’ 뒤 ‘프레피’라는 커피숍 3층의 원룸은 그 회사 동료들이나 광고회사 친구들이 뻔질나게 놀러와 술을 마시다 가거나 자고 가는 일종의 여인숙 같은 곳이었습니다. 회사가 걸어서 10분 거리였고 야근이 많다 보니 어떤 경우엔 술도 안 마시고 밤에 들러 잠만 자고 가는 인간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대학 때 친구들이 자주 놀러가던 연희동 재섭이네 집 별칭이 ‘재섭장’이었던 것처럼 그때 저의 집 별명도 ‘성준장’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늘 집으로 사람들이 놀러오는 걸 좋아하는 인간형이었던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Y대표와 L피디가 밤 열시 반에 저희 집으로 놀러와 문어와 술을 먹고 갔습니다. 아내가 SNS를 통해 알게 된 분에게 직접 주문한 문어가 도착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아내가 ‘문어번개’를 쳤을 때는 K실장, J실장, 또다른 J실장 등이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니면 저랑 같이 일을 하는 Y피디나 우변(변호사가 아닙니다)을 초대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업계 일이 늘 그렇듯이 원래 멤버들은 모두 다른 스케줄이 생겨 줄줄이 취소가 되고 Y피디와 우변도 그날 편집실에서 밤을 새게 되는 바람에 결국 그 시간까지 저와 회의를 하던 Y대표와 L피디가 어부지리로 문어를 먹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어부지리 문어회동’은 새벽 두 시 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역시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와 일 얘기가 이어졌고  우리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추억의 인물들이 차례차례 도마 위에 올라와 잘게 부서지는 시간이기도 했죠. 다음날 아침 아내는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 제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말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게 좋아. 그 사람들이 와서 내가 해주는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술이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아.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우리가 이런 데 쓰는 돈을 아까워 하지 않고 계속 이렇게 부자로 살았으면 좋겠어.” 



다행입니다. 저는 지금 같은 인생관을 가진 사람과 비슷한 지향점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까요. 비록 좀 더 편안하게 길게 쓰고 싶은 이 글을 여기서 마감하고 일요일인 오늘밤에도 야근을 해야하는 좀 한심한 처지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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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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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리조트 회사의 광고. 공감이 많이 됩니다. 

작년엔 여름휴가를 못갔었는데 올해는 꼭 갈 생각입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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