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책꽂이에서 J.D 샐린저의 단편집 [아홉 가지 이야기]를 꺼내 <웃는 남자>라는 단편을 읽었다. 1920년대 맨해튼에 살던 꼬마의 이야기다. 소년은 '코만치 클럽'이라는 어린이 야구단에 소속되어 주말마다 낡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시합을 하러 갔는데 이 팀의 코치 겸 운전사가 '추장'역할을 맡고 있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 젊은 추장은 버스를 운전하고 가다가 어느 순간 멈춰서서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 아이들을 매료시킨다. 그 주에 하던 얘기는 '웃는 남자' 였다. 어렸을 때 중국인들에게 납치를 당해서 얼굴이 망가진 남자의 복수극인데 매번 클라이막스에서 끝나고 다음 주를 기약하는 방식이라 아이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버스 운전석에는 어떤 여자의 사진 액자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녀는 추장의 애인인 메리 허드슨이라고 했다. 정말인가 아닌가 궁금해 하던 차에 어느날 추장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길에서 여자를 태우고 야구장으로 갔다. 그녀가 바로 메리 허드슨이었다. 그녀는 포수 그러브를 끼고 그날 감기에 걸려 시합에 빠진 친구 대신 이루수를 맡아 경기를 하며 소년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웃는 남자와 메리 허드슨. 소년은 아마도 이 두 가지 때문에 매주 코만치 클럽 시간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메리 허드슨은 추장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소년의 행복한 시절은 추억이 되었다.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추억의 드라마 <캐빈은 열두 살>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저녁 TV에서 들려오던 캐빈의 목소리. 캐빈의 형이 월남전에 나갔다가 죽었으니 이 소설과는 연대가 안 맞지만 그래도 이 단편을 각색해서 그때처럼 드라마로 만들고 배한성이 더빙을 하면 그 느낌이 얼마나 애잔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노란 석양을 배경으로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떠난 뒤 힘없이 현관문을 들어서는 소년의 뒷모습이 꽤나 쓸쓸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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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명동 엘칸토 예술극장에서 피터 한트케의 언어유희극 <카스파>를 본 적이 있다. 아무런 사정 정보 없이 보게 되었는데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인극이라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나는 연극 도중에 목이 칼칼해서 계속 '음,음...'하고 헛기침을 했는데 배우가 갑자기 연극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노려 보며 "거, 연극을 볼 때는 그 목으로 음,음...소리 좀 내지 말아요!"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배우도 좀 너무 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인 나는 너무 놀라고 무안해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었다. 그러니 어찌 그 연극을 잊을 수가 있으랴.  


내게 명동은 구두와 연극의 거리였다. 엘칸토 예술극장이라는 이름도 금강제화라는 구두회사의 후원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을 것이다.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본 것도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창고극장은 사라졌고, 엘카토예술극장도 없어졌다. 그런데 언제인가 명동예술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동네에 사는 김진경 연출가가 이 연극을 우리에게 추천했고 아내가 김광덕 배우에게 예약을 부탁했는데 마침 예약 취소된 자리가 있다고 해서 운 좋게 빨리 그 연극을 보게 되었다. 어제 저녁 연극을 보고 나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급하게 관람후기를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오늘 정신을 가다듬고 독서일기를 하나 올린 뒤 오자 수정을 해서 여기에도 다시 한 번 올려 본다. 


아아. 내가 이렇게 문화 생활을 자주 해도 되는 걸까. 성북동으로 이사 온 뒤로 영화는 좀 줄었는데 오히려 연극 나들이가 부쩍 늘었다. 배우들이 이웃에 살아서 그런가 보다. 오늘은 명동예술극장에서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로버트 알폴디가 새로 해석한 연극 [메디아]를 관람했다. 성북동에 사는 여배우 김광덕 씨가 코러스로 출연하는 작품인데 오랜만에 보는 배우 이혜영 주연 작품이라 더욱 기대가 되는 연극이었다.

난 어렸을 때 엉터리로 읽은 기억이 조금 나긴 하는데(그리스 비극이 다 그렇듯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배신, 분노, 복수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나는 이혜영의 목소리와 억양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번 연극의 타이틀 롤인 메디아 역으로는 이혜영 이외의 배우를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딱 적역이었다(단 8분 간 출연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남명렬 배우 - 요즘 아로나민 골드 CM에 나와 '드신 날과 안 드신 날의 차이을 경험해 보십시오' 라고 말하는 분 - 도 좋았다) 같이 출연한 김광덕 씨는 이혜영 선배와 출연하며 그 카리스마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믿었던 남자 이아손에게 배신을 당한 메디아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배신자에게 가장 큰 아픔을 남기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그건 바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죽이는 것이다. 최고의 복수는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스스로 용서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단히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비극의 장치로서 이보다 더 센 선택은 없을 듯하다. 감독은 신들의 이야기였던 원작에서 신의 영역을 모두 삭제하고 철저하게 인간의 '러브 스토리'로 개작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혜영 배우에게 들은 얘기지만 '분노는 큰 사랑에서 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앞뒤로 움직이는 기다란 의자를 이용한 심플한 무대도 멋졌고 그리스 비극이지만 모두 현대 의상을 입고 나오는 점도 좋았다. 다만 유머가 거의 없는 정극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좀 힘들었다. 그리고 해설을 대신해 가끔 나오는 직설적인 대사는 너무 친절해서 짜증이 났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내 앞에서 일어서던 여자 관객은 옆 친구에게 "야, 내 기가 다 빨린 느낌이다." 라며 웃었다. 두 시간 내내 계속된 열연과 긴장감에 약간 탈진을 한 것이다. 물론 연출가도 배우도 관객도 쉬운 길을 마다하고 일부러 선택한, 고되지만 뿌듯한 탈진감이었다.

끝으로 이혜영 얘기 하나만 더. 연극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두 아이를 죽인 뒤라 옷과 손에 피를 묻힌 상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이혜영이 개인적인 얘기를 언급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동안 계속 작품 활동을 하긴 했지만 지난 이십 년간 엄마와 아내로서 아이들 키우는 데만 집중하다가 작년에 연극 [갈매기]를 기점으로 '숨어있던 욕망'을 다시 발견했음을 깨닫고 작품이 끝난 뒤 집에서 일주일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심정을 추동력 삼아 이번에 다시 [메디아]라는 작품에 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4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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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문체의 향연’에 있어서 우리 글이 도달할 수 있는 빼어남의 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되는 에세이 [자전거 여행] 어딘가에서 김훈은 시장에서 파는 해산물들을 바라보며 ‘인간은 기본적으로 개불과 다를 바 없다. 입과 항문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다 부속물이다’라는 생각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매우 인색한 평가지만 평소 거대담론이나 인간의 신념따위를 도무지 믿지 못하는 그의 솔직한 심정이 서려있는 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비록 역사소설이라 하더라도 권력이나 영웅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개인’으로 귀결된다. <칼의 노래>가 임진왜란 당시의 전지적 시점이 아닌 이순신 개인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 것이나 <흑산>도 천주교 박해 당시 나라 안팎의 역사정치적 상황을 파고드는 대신 황사용이나 정약전이라는 개인의 선택에 집중했던 게 그 까닭이다. 

그런 김훈이 일제시대부터 8.15해방, 6.25와 월남전을 지나 10.26과 1980년대를 아우르는 소설을 쓴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그 해답이 바로 6년 만에 새로 나온 소설 [공터에서]다. 소설은 마동수라는 한 사내의 초라하고 쓸쓸한 죽음으로 시작된다. 독립문 근처 빈민들이 모여 사는 쪽방촌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그의 생애는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서 매 맞던 모습에서부터 만주를 떠돌아 아나키스트 운동을 하다가 실패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도 영원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던 인물의 약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1979년에 독재자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그의 죽음이 다른 소설에서처럼 한 세대를 마감시키고 새로운 탄생을 축복하는 도식도 아니다. 그는 북에서 젖먹이를 잃고 내려온 아낙을 만나 그 사이에서 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첫 아이는 장세, 둘째는 차세라 이름 지었다. 

마장세는 월남전에 나가 훈장까지 탔지만 그 이력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대 후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않고 괌으로 가서 고철 사업을 하며 살아간다. 적진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아직 살아있던 동료를 죽였던 죄책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될 터이고 정작 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묘비 사이를 걸어가면서 마장세는 1972년 9월 25일 롱하이에서 덜 죽은 김정팔을 사살한 일은 잘한 일도 아니고 잘못한 일도 아니며, 거기에 잘잘못을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을빛에 반짝이는 말뚝들이 마장세의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을 끌어당겨주었다. 그때 죽이지 않았더라면 김정팔은 밀림 속에서 혼자 죽거나, 적에게 끌려가서 심문받다가 죽었을 것이고, 실종으로 분류되어 무공훈장도 묘비도 없었을 것이지만 딱히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김정팔을 쏘아 죽인 것은 일이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대로 되어진 것이라고 마장세는 비석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무엇이 잘못되었단 마인가. 마장세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서 마음을 안정시켰다. 

김훈의 소설에서 인간은 똥을 싸고 토악질을 하거나 물비린내에 시달리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존재들이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좀처럼 착한 사람이나 악한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닥친 상황과 세상을 겨우 또는 기진맥진 ‘살아내는’ 개인들이 존재할 뿐이다. 김훈의 이러한 비관은 역사소설에서는 비장함과 멋스러움으로 다가오는데 현대소설에서는 그대로 비참함이 된다. 그들은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변방을 떠돌며 고철이나 쓰레기 수거사업을 하고 광야를 달리는 대신 어중간한 ‘공터에서' 서성일 뿐이다. 동생 차세도 오랜 실직 상태에 시달리다 형과 친구의 일을 돕지만 다시 실직 상태가 된다. 모두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달리 방법을 알지 못한다. 

김훈이 이렇게 여러 세대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다섯 권짜리 대하소설이 될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는 역사와 사회로 곁가지를 치고 뻗어나가지 않고 개인 차원으로 수렴하는 작가의 특질 때문에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소설로 마감되었다. 그러면서도 근 60년을 살아온 한 집안의 내력과 그 주변인물들에 대한 쓸쓸한 소회가 마음을 서늘하게 적신다. 더구나 형용사와 부사를 배제하는 그의 글쓰기는 주어와 술어의 단조로운 반복이지만 화려하지 않아서 더 화려해지는 역설을 낳는다. 

그도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멋진 영웅담이나 복수극을 쓰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장에 깊은 허무를 탑재하고 있는 김훈이라는 캐릭터는 결코 그런 글을 쓰지 못할 것이고 쓰지도 않을 것이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장석주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허무를 말할 때 그의 문체는 가장 화사해진다’라고 했다. 나도 김훈이 쓴 벚꽃 지는 날에 대한 짧은 글을 기억한다. 미인은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일 때 그 아우라가 더욱 빛난다. 김훈의 글이 그렇다.   


*사족 : 내가 읽은 것은 초판5쇄인데, 188페이지 마동수의 묘지 얘기를 할 때 ‘마차세의 동지들이 거기 묻을 것을 요구했다’라는 문장은 ‘마동수의  동지들’을 잘못 쓴 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마동수에 관한 이야기이고, 마차세에겐 이렇다 할 동지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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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가 일을 저지른다’라는 말이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덥썩 뭔가 시작해버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오늘 아내와 함께 참석한 명로진의 북콘서트 [논어 당일치기]가 그런 경우다. 아무리 요즘 다양한  북콘서트가 유행이라지만 무려 2500년 전 공자의 4대 제자들이 쓴 ‘논어’의 북콘서트라니. 게다가 토요일 아침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당일치기’로 가는 강행군이다. 이만하면 무모한 도전 아닌가.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요즘 경험한 일상 중에 가장 ‘핫’한 시간이었다. 

기자 출신에 한때 연기자로도 활약했던 명로진은 수십 권의 책을 쓴 작가인 동시에 오래 전부터 ‘인디라이터 양성’으로 이름 높은 스타 강사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중국 고전을 소개하는 인기 팟캐스트도 운영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논어를 좀 화끈하게 공부하는 시간을 가질 순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마침내 일곱 시간 연속 강의를 생각해 낸 것이다. 

강의는 약속대로 오전 10시 정각에 시작되었다. 명로진 선생이 직접 만든 교재를 펼쳐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읽으면 학생들이 이어서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면 정말 기쁘지 않겠느냐’라고 한글 해설을 읽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소개하면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서당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논어’라는 책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도 플라톤의 [국가]나 [소크라테스의 변명] 같은 서양 고전들이 무시로 끼어들고 ‘스키십’이나 ‘사교육’ 같은 현대어들이 적절하게 사용되는가 하면 우병우, 최순실 같은 인물들이 공자님 말씀의 예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진중함을 잃지 않는 철학적 고찰과 해석들이 초롱초롱한 수십 개의 눈동자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약 두 달 전에 이 강의가 기획되었는데 처음에는 강의 신청자가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강의 시간도 길고 강의료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명로진 선생은 강의 도중 그런 얘기를 하면서 맨 처음 공고가 나자마자 신청해준 아내 윤혜자를 비롯한 몇몇 분들에게 조그만 선물을 전달했다. 선생이 공자의 고향에 가서 사온 ‘향나무 공자상’이 그것이다. 비싼 것은 아니라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런 선물을 받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점심 시간에 김밥을 먹을 때 수육을 가져와 나눠주신 분도 있었고 강의 후 간단한 뒷풀이 자리에서는 황현호 선생이 가져 온 ‘마약두부’를 맛보기도 했다. 심지어 꽃다발을 가져 온 플로리스트도 계셨고 커피 머신을 가져와 행사를 도운 제자도 있었다.    

북콘서트 도중에 초대 가수의 진짜 콘서트도 있었다. '술을 마시고’라는 곡으로 유명한 ‘금주악단’이 와서 세 곡을 불렀다. 워낙 독특한 인디밴드라 아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고 나중에는 앵콜곡으로 ‘낙타’라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가 ‘공자님 말씀 하고 앉았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은 정작 공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역설이 성립된다. 명로진 선생은 공자 강의를 기획하면서 스스로 만든 교재 맨 앞장에 이런 글을 인용해 놓았다. 

‘논어를 읽기 전에도 그저 그런 사람이요, 
읽은 후에도 그저 그런 사람이라면 
곧 논어를 읽지 않은 것과 같다.” 
- 정이천(1033~1107) <논어 집주> 

위 글이 아니더라도 한 자리에 모여 논어를 읽고 듣는 일은 확실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정이천의 말대로 논어를 읽은 후에도 '그저 그런 사람'인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왜 그럴까. 

논어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몇 줄의 문장으로 엑기스만 담긴 책이다. 당시에는 그 정도 문장만 있어도 사람들이 다 맥락을 이해 했겠지만 이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그 글만 읽어서는 앞뒤 사정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 '사실 그때 공자의 수제자 자공은 이러이러한 성격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안회라는 제자는 공자에게 어떻게 편애에 가까운 사랑을 받았는지 등등을 설명해 주면서 그 시대에 이러이러한 일화들이 있었기에 아마 이런 문장이 나왔을 것이다'라고 배경을 깔아 준다면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강의를 듣는 동안 우리는 공자라는 인물이 수천 년 전 죽은 전설의 히어로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얼마 전까지 존재했었던 '셀럽' 같은 느낌으로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진지하게 그의 사상과 철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이노베이션은 옛것에서 새로움을 찾아낼 수 있는 눈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있다. 우리가 오늘 논어를 접하고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변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작은 단초라도 제공할 수 있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은 힘들어서 국악인들도 판소리 완창을 안 한다는 그 일곱 시간 동안 연속 강의를 마친 명로진 선생은 막판엔 기진맥진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오후 다섯 시에 이르니 아이 하나 낳은 아낙처럼 해맑고 뿌듯한 얼굴이 되었다. 

 오늘은 1강에서 5강까지 들었는데 앞으로 20강까지 들어야 ‘논어’를 다 떼는 것이라 한다. 아내는 강의실을 나오면서 앞으로 일요일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있을 논어 강의를 신청했노라 통보했다. 오늘 특강 때문에 회사 가서 일하는 것을 내일로 미뤄 놨는데 앞으로는 당분간 일요일을 피해 토요일에 특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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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을 많이 한 내게 

어느날 산신령님이 내려와 

소원을 한 개만 말해보라 하면 


잘난 놈들 다 죽어버려랏, 

하고 외칠 테고

그러면 나랑 안 친한 애들은 

거의 다 죽어 나자빠질 테고 


나랑 특히 친한 

몇몇 바보들만 

피둥피둥 살아서 

바닷가 술집에 앉아 있겠지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술집에 앉아 있는 

바보들 얼굴이 

벌써 마구 떠오르니




(*3년 전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과 사진을 다시 가져와 봤습니다. 비기 와서. 싱숭생숭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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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눈이 떠져 물을 마시러 밖으로 나왔다가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아니, 사실은 물을 마시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잠이 안 와서 책이나 읽으려고 나왔는데 아내가 잠결에 설거지나 하라고 해서 하게 된 것이었다. 간밤에 친구들이 놀러와서 술을 마셨으므로 싱크대엔 많은 술잔과 접시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그 그릇들을 보니 책을 읽고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책을 읽기 전에 설거지부터 하자고 마음 먹었다. 처음엔 하기 싫었는데 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붙어서 열심히 하게 되었다. 설거지를 다 하고 마른 행주로 유리잔과 그릇들의 물기까지 다 제거하고 난 뒤 비로소 식탁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집어들었다. 


제목을 읽고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마지막 챕터 소제목이 '카레닌의 미소’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쇼코의 미소>는 제목과 달리 그리 서정적인 작품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한국에 와서 홈스테이를 하며 주인공 소유를 만나게 된 쇼코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중편 소설이다. 그런데 유창한 영어로 “언젠가는 유두 근처에 애벌레 모양 타투를 할 거야.”라고 말해 주인공 소유를 웃게 만들었던 쇼코는 시간이 지나면서 소유와 점점 괴상하고 살벌한 대화를 주고받게 되고 소설은 이 부분부터 범상치 않은 공력을 발휘한다. 

소설을 읽기 전 평소의 버릇대로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는데 거기엔 작가가 등단하기 전에 얼마나 여러 번 좌절하고 절망했는지가 잘 나타나 있었고 그 심정은 소설 속 소유가 영화감독 지망생이 되어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 영화를 만들며 주변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을 때의 모습으로 그대로 투영된다. 나는 훌륭하게 쓰인 거의 모든 소설은 실패담이라고 믿는 편인데 이 소설도 예외는 아니어서 소유는 끝내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하지 못한다. 아니, 그녀가 성공했더라면 이 이야기는 쓰이지 못했을 것이고 만약에 작가가 살짝 미쳐서 그렇게 썼더라면 아무런 재미도 없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쇼코가 일본어로 주고받는 편지에 대한 질투, 소유가 일본으로 찾아갔을 때 쇼코가 보여줬던 이상한 행동 등은 나중에 할아버지와 엄마의 비밀들과 반전으로 얽히면서 기이한 감동을 준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아내에게 ‘당신은 술이 취하면 안주를 너무 게걸스럽게 먹는다’는 주의를 듣고 짧게라도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의 띠지에 ‘소설가들이 뽑은 2016년 올해의 소설 1위!’라고 쓰여 있더니 정말 묘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이다. 이 느낌을 한 마디로 뭐라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년에 읽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와 더불어 책꽂이에 나란히 세워두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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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전에 소설의 수준은 결정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가가 초고를 쓰기 전 어딜 가는가, 무엇을 읽는가, 누굴 만나는가에 따라 소설의 내용과 형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법이다.”

소설가 김탁환이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 감사의 글’에 쓴 문장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기 전에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들을 듣는지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과 디테일이 달라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 텐데, 왜 그는 굳이 이런 얘기를 책 말미에 써놨을까. 아마도 그는 언론 보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접하는 것과 직접 현장으로 나가 관련된 사람들과 인터뷰 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주하는 세월호의 이면이 얼마나 다른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너무, 자주 기가 막혔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하려고 해도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얘기와 상황들. 나도 예전에 자주 가던 식당에서 주인아줌마가 TV뉴스를 보다가 “아유, 유족들 한 사람당 삼 억씩 받았다메?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받으려고 저 난리래…”라고 말하는 걸 듣고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사장님,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으셨어요? 라고 말하던 나는 그 순간의 무력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노란 리본 좀 안 달고 나오면 안 되냐고, 이젠 세월호 지겹다고 말하던 청중 속 아줌마에게 ‘자기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 호통치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심정이 그때 나와 같지 않았을까.

김탁환의 소설 [거짓말이다]는  세월호 참사 이후 맹골수도에서 선체 수색과 실종자 수습을 위해 일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이다. 김탁환은 세월호 사건 이후 조선 후기 조운선 침몰 사건을 다룬 장편 [목격자들]을 펴냈지만 역사적 사건의 비유만으로는 도저히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가 없어서 결국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을 다시 쓰게 된 것이다. 마침 세월호 유족들이 출연하는 팟캐스트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목격자들]을 읽고 김탁환을 사회자로 초빙하면서 소설의 구성은 더욱 객관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설의 주인공을 단원고 학생들이나 유족 대신 민간 잠수사로 정한 것이었다. 사건에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유족들처럼 마냥 슬픔에 잠겨 있는 게 아니라 뭔가 구체적인 ‘작업’을 수행했던 사람들. 그러면서도 그 선의를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한 건’ 하러 내려갔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도록 일만 하다가 신체적 외상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심지어 정부로부터 민간 잠수사로 인정도 받지 못한 그들.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이었고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했던 던 잠수사 나경수가 이 소설 [거짓말이다]의 주인공이다.

 소설 속 이름은 ‘나경수’로 나오지만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은 김관홍이다. 김탁환은 팟캐스트 진행을 하다 민간인 잠수사였던 김관홍을 만나면서 세월호 침몰 이후 벌어진 일련의 참담한 과정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다. 일테면 희생자를 인양하는 방법은 오로지 두 팔로 시신을 껴안고 올라오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신문이나 뉴스를 봐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나라에서 끝끝내 바디팩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아직도 배가 인양되지 않았으니 침몰된 선체의 내부를 직접 본 사람들은 잠수사들 뿐인 것이다.

작가는 세월호 유족들 뿐 아니라 진도 어민, 생존 학생과 그 부모들, 공무원, 동료 잠수사들, 심지어 일베 회원들까지 만나면서 이 사건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의 연속이고 동시에 사실들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르포타쥬 형식으로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

“돈 벌려고 간 겁니다. 간단해요…잠수사 일당이 백만 원이고, 시신 한 구당 오백만 원을 더 얹어 준다면서요? 민간 잠수사가 한 달 잠수하며 시신 열 구를 건졌다고 칩시다. 그럼 얼맙니까? 월수 3천만 원에서 시신 건진 값이 5천만 원이니, 한 달에 자그마치 8천만 원을 버는 겁니다. 그렇게 두 달이면 1억 하고도 6천만 원이죠. 두 달 동안 국가에서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줬습니다. 생활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죠. 나야 핸들 잡는 재주밖에 없어 이러고 있지만, 잠수기능사 자격증만 있다면 당장 그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잠수사들에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바로 맹골수돕니다.”

소설가 김탁환이 만난 대리운전 기사 공환승(60세) 씨의 이야기다. 누가 이 사람을 욕할 수 있을까. 우리도 한때 이런 흉흉한 소문을 듣지 않았던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믿었다. 잠수사들이 그렇게 많았다는데도 단 한 명을 구조하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이기도 했고 또 너무나 기가 막힌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김관홍을 비롯한 많은 잠수사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내려간 것이지만 그러한 마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다 죽은 뒤에 내려가면 뭐하냐', '돈 벌러 가는 것 아니냐'라는 비아냥거림이 있을 뿐 이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해군이나 해경과는 달리  작업일자 내내 육지나 항공모함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바지선에서 생활했던 민간 잠수사들은 결국 일을 끝내지도 못하고 나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

김관홍은 잠수사 일을 그만두고 대리운전을 했고 아내는 꽃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바닷속에 들어가 활보하던 사람이 대리운전을 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맹골수도에 다시 간 나경수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장면으로 끝나는 소설의 마지막을 작가에게서 듣고 마음에 들어 했다던 김관홍 잠수사는 결국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 글을 다시 읽어보니 이 독후감은 2016년 11월 6일에 쓰다가 만 것이었다. 일요일에 시작해서 그날 다 쓰려다가 무슨 일이 있어서 미뤄둔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인터넷에서교보문고가 2016년도 '올해의 한국소설10'을 발표했는데 거기서 1위로 뽑힌 소설이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라는 기사를 읽고 그때 쓴 메모를 다시 찾아보았다. 참담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천 일이 지났지만 선체는 여전히 인양되지 않았고 참사 당일 대통령의 일곱 시간 행적도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희생자들도 건져내지 못한 우리들은 역사의 죄인이 아닌가.

그래서 [거짓말이다]라는 소설이 고맙다. 역사소설을 주로 써오던 김탁환은 세월호를 기점으로 난생 처음 르포에 가까운 현대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의 인세는 전부 세월호 규명 활동을 위해 기부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김탁환 덕분에 우리는 세월호라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아주 외면하지는 않고 잠시 들여다 보았다는 치사한 위안을 얻는다.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비겁한 우리들을 위한 최소한의 알리바이 같은 소설인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간악한  무리들이 저지른 국정농단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기 힘든 시절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으며 옳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제 오늘 다시 들춰본 이 소설책에서 김관홍이 후배 잠수사인 박정두에게 일갈했던 구절이 눈에 아프게 밟힌다.

"정두야! 작년 봄 맹골수도로 내려오란 권유를 받고 내가 무슨 생각한 줄 알아? 간단해. 이게 옳은 일인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 지금도 마찬가지야. 옳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난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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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러스트 앤 본]을 ‘Watcha play' 서비스로 보았다(서비스 가입을 해놓고 시간이 없어서 못보다가 며칠 전 해약을 했는데 이번달 말까지는 뭐든 볼 수 있다고 해서 문득 어제 이 영화를 찾아보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녹과 뼈’라는 이 제목은 동명 소설집에서 따왔다는데 불어와 연관되어 가깝게는 ‘주먹다짐’을 뜻하기도 하고 넓게 보면 ‘녹을 벗겨내다’라는 의미로까지 확장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영어나 불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좀 더 심오한 뜻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냥 그 정도로 어림짐작을 할 뿐이다. [예언자]나 [내 심장을 건너뛴 박동]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만든 영화지만 내게는 마리옹 코띠아르의 영화라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마리옹 코띠아르의 얼굴과 표정이 좋다.[인셉션] 같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그 번듯한 미모가 빛나지만 이 영화처럼 캐릭터 중심의 작품에서는 잘생긴 얼굴이면서도 한편 평범하기도 하고 회한이 서려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연기를 참 잘 한다는 얘기다. 

이번 작품에선 사고로 두 다리가 잘린 전직 범고래 조련사 역이다(특수효과를 잘 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정말 두 다리가 잘린 채로 나온다). 그런 여자가 사고 이후 처음으로 남자에게 안겨 머뭇머뭇 바다 수영을 하는 장면도 좋았고 남자의 제안에 의해 첫 섹스를 한 뒤 또 하고 싶어질 때마다 ‘출장 가능?’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도 좋았다. 나중에는 남자친구의 브로커 역할을 맡아 의족을 달고 길거리 싸움 현장에서 유유히 지폐를 세는 장면조차도 그녀라서 잘 어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알리로 나오는 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의 연기도 훌륭했다. 몸으로 살아가는 전직 복서이자 현 경비원인 짐승남의 역할을 무심한 척 능숙하게 연기한다. 

이 영화는 스테파니의 잘린 다리로 시작해 알리의 길거리 주먹싸움 장면에서 튀는 핏방울들과 상처와 치아, 마지막 얼음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맨주먹으로 빙판을 부수는 장면 등 육체를 날것으로 다루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아마도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살아간다는 것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이처럼 매순간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처럼 살아가기 팍팍한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들을 관조적으로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아들을 구하느라 주먹뼈를 다친 알리가 병원에서 아들이 깨어난 후 스테파니에게 처음으로 휴대폰을 통해 사랑고백을 하는 장면은 뭉클하다. 음악이나 촬영도 훌륭하다. 201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작이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에게 밀려 수상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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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택이라는 아트디렉터가 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광화문 집회 때마다 나가 전경버스 차벽에 영화 패러디 포스터를 붙이는 열혈 청년입니다.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도 광고일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라 그리 한가하지 않을 텐데 그 열정과 정성이 놀랍습니다. 이용택 실장은 작년에 제가 존경하는 카피라이터 정철 선배님과 세월호를 잊지말자는 공익광고를 몇 편 제작해서 페이스북에 공유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제게도 세월호 카피를 쓸 수 있는지 문의를 해왔습니다. 망설였습니다. 자칫 하찮은 잔재주나 공명심으로 비쳐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친한 사이도 아닌데 프로젝트를 제안한 이용택 실장의 용기와 진심을 믿고 몇 개의 카피를 썼습니다. 


'너희를 가라앉힌 건 우리가 아니지만 너희를 건져내지 못한 건 우리들이기에, 우리는 죄인이다’라는 카피를 제일 먼저 썼습니다. 써놓고 나니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다이렉트하게 써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슬픈 빅뱅.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서 304개의 우주가 사라졌다’ 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세월호 아이들 하나하나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우주들이었으니까요. 


푸르른 하늘과 힌 구름들 위에 떠 있는 노란 종이배 그림을 보며 천국을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세월호 안에 안에 갖혀있는 아홉 명을 생각하며 ‘그 누구도 하늘나라로 가지 못했어. 아직도 아홉 명은 바닷속에 있으니까. 함께 가야지’ 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실을 인양하라’라는 카피를 붙일까 말까 하다가 붙였습니다.

 

‘4월 16일’이라는 날짜를 가지고 카피를 써봐야지 생각한 뒤 '4월16일'이라는 헤드라인 밑에 ‘4월 16일 생일인 분들 미안합니다. 4월 16일 결혼기념일인 분들 미안합니다…해마다 4월 16일만은 옷깃을 여미고 조용히 눈물을 흘립시다’라는 바디카피를 썼습니다. 마지막 줄은 '4월16일이 소중한 날인 모든 분들 죄송합니다'로 고치고 싶었는데 업무에 쫓겨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첫 출근일이 4월 14일인데 해마다 그때가 되면 세월호 생각만 하는 저의 처지를 떠올리면서 그런 분들이 많을 거란 생각에 써본 카피였습니다. 



이용택 실장이 보내온 의자 그림에 ‘다시는 가만히 있으라 하지 않으마. 다시는 어른들을 믿으라 하지 않으마. 다시는 대한민국으로 너희를 부르지 않으마’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너무 과격한 것 같다는 이 실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시는 너희들을 그냥 보내지 않으마’라는 문장으로 고쳤습니다(지금 보니 오자가 나 있군요. 나중에 고치겠습니다). 



어두운 막에 손을 대고 절규하는 듯한 그림이 왔길래 ‘2014년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세월호 안에 있습니다’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세월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못하겠다’라는 카피는 제 업무수첩에 적혀 있던 글입니다. 언젠가 광고에 써먹으려고 메모해 놓은 글이었는데 이렇게 세월호 카피로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네이버사전을 찾아서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하겠다’의 ‘못’은 떼고 ‘그 누구도 하늘나라로 가지 못했어’의 ‘못’은 붙이는 것이라는 맞춤법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우리말은 참 어렵습니다. 


또 한숨이 나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걸까요. 우리는 평생 세월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입니다. 카피를 쓰면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지만 한 조각이라도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에겐 저 말고도 더 훌륭한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감독님들이 많이 계시니 광고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작업은 계속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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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출근날, 우리회사는 시무식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하나 진행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과 손편지 전해주기였습니다. 사실은 출근 전날 저녁에나 이 행사를 하기로 한 게 겨우 기억나는 바람에 집에 있는 썬블럭으로 선물은 겨우 마련했지만 편지는 쓰지 못했죠. 누가 받을지 모르는 편지를 도대체 어떻게 쓰란 말야, 하면서.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한 저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행운의 편지'를 인용하기로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인터넷으로 '행운의 편지'를 검색하고는 펜을 꺼내 단숨에 쓰기 시작했죠.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복사를 해도 좋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라는 편지를 받았다면 당신은 기분 더러운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그런 행운의 편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지금 2월31일이라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그래서 저와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나눈 사이라면 말입니다. 우리 '2월31일'은 올해도 더 발전하고 더 인간적인 회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 당신이 받은 이 편지는 행운의 편지가 분명합니다. 

2017년 1월1일 편성준 드림 



이 편지는 저와 같이 일하는 후배 카피라이터 이승찬 씨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편지를 받고 잠깐이라도 좋아했다면 다행입니다. 아니면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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