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낮잠에서 깨어난 나는 오디오를 켜 말로의 앨범을 틀어놓고 현관앞에 앉아 책꽂이에서 충동적으로 꺼내온 김훈의 <바다의 기별>을 펼쳐들었다. 책을 열자 여기저기 파란색 볼펜으로 쳐놓은 밑줄과 메모들이 보였다.

딸이 첫 월급을 받아 휴대폰을 사주고 용돈으로 15만 원을 주었을 때 김훈은 '노동과 임금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딸'을 쳐다보며  ‘그때 나는,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라고 썼고 나는 그 귀퉁이에다 “좀 대견했다고 쓰면 어디가 덧나냐”라고 끼적이고 있었다. 김훈이 친구들과 술 마시는 자리에서 엉뚱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소방장비들의 기능과 작동방식에 대해 늘어놓다가 핀잔을 받는 장면에다가는 “데뷔작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얘기는 왜 안 하냐”라고 또 시비를 걸고 있었다. 

‘70년대의 기라성 같은 청년작가 김승옥이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발표했을 때, 아버지는 문인 친구들과 함께 우리 집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 그들은 모두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이 빠진 상태였다…새벽에 아버지는 “이제 우린들 시대는 이미 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라는 문단을 읽으면서 문단에서 김승옥이라는 작가의 등장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었는지를 새삼 느꼈고 그게 가능했던 매체 환경과 감수성을 부러워했다. 


그러다가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아직 김지하의 정신이 말짱하다 못해 푸른 대나무처럼 빛나고 있을 때였고 스물일곱 살의 청춘인 김훈이 신문기자로 발령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영등포 교도소에서 김지하와 백기완 등 정치범들의 출소를 기다리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다들 교도소문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었으므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중국집에서 배달 온 식은 짬뽕국물을 마시며 교도소 안으로 전화를 걸어 “야, 풀어주려면 제발 지방판에 맞춰서 풀어주라. 지방 독자는 사람이 아니냐”라고 욕설을 퍼붓던, 그 스산하고 춥고도 지루한 풍경. 

그때 김훈은 교도소 정문 맞은편 야트막한 언덕에서 웬 허름한 여인네가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채 추위 속에 웅크리고, 저물어가는 교도소 정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혹시 박경리가 아닐까 하고 다가가 훔쳐보니 김지하의 장모 박경리 선생이 맞았다. 대절한 택시를 옆에 세워놓고 태어난지 10개월 된 손자를 어르며 언제 나올지 모르는 김지하를 기다리고 있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 김훈은 운좋게도 혼자 박경리를 알아보았지만 그렇다고 기자들을 향해 “여기 박경리 왔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다. 

밤 아홉 시께 옥문이 열리고 머리를 박박 깎은 김지하가 나타났다. 고은, 천승세, 조태일, 김광협 들이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고, 학생들이 김지하를 무등 태워서 캄캄한 교도소 앞 광장을 미친 듯이 달리며 고함을 질렀다. 김지하는 장모가 와있는지도 몰랐으므로 아무 생각도 겨를도 없이 그들의 지지자들이 마련한 승용차를 타고 교도소 앞을 떠났다. 

다른 기자들은 대부분 김지하의 승용차를 따라 명동성당으로 가버린 뒤 김훈은 김지하 출감 기사를 먼저 신문사에 전화로 송고하고 백기완이 나오기를 또 기다렸다. 밤 열한 시쯤 드디어 백기완이 나오게 되었는데 교도소측에 의하면 6년 전 백기완이 국민투표법 위반으로 벌금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어서, 그 벌금 십만 원을 납부하지 않으면 석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즉석에서 모금이 시작되었으나 이미 사람들이 대부분 떠난 후라서  제대로 모금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교도소 정문 앞 광장에 내려온 박경리가 포대기 앞섶을 뒤적거리더니 만 원짜리 몇 장을 내놓고 대학생에게 이 돈을 보태라 말하고는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기자의 신분으로 모금에 참가할 수 없어 주머니 속에 있는 만 원짜리 몇 장을 만져보고만 있었던 김훈은 마지막이 이렇게 썼다.

그날 밤 나는 신문사로 돌아가 마지막 기사를 작성했다. 나는 박경리에 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나는 다만 백기완의 출소 모습만을 추가로 썼다. 나는 박경리에 관하여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쩐지 그것이 말해서는 안 될 일인 것만 같았다. 새벽 두 시께 집으로 돌아와 잠자다 일어난 아내에게 그날의 박경리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내는 울었다. 울면서 “아기가 추웠겠네요”라고 말했다. 춥고 또 추운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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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함정임은 예전에 경향신문의 칼럼에서 "성인 남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에 쓰기의 표현 욕망과 지면(紙面)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킨 매력적인 직종이 존재했다. 바로 신문 기자였다." 라고 하면서 "일찍이 그것을 터득한 기자 출신 작가가 20세기의 헤밍웨이, 카뮈, 김훈이고, 오늘의 장강명이다." 라고 쓴 적이 있다.


과연 장강명을 헤밍웨이나 카뮈에까지 견줄 수 있을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요즘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한겨레문학상 발표 즈음에서 심사위원 중 누군가가 '이제 장강명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는데 데뷔작인 [표백]을 읽을 때만 해도 그 말에 크게 동의하진 않았다. 그런데 한참 뒤에 강남구청역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우연히 [뤼미에르 피플]이라는 단편집을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샀다. 누군가 사서 한 페이지도 읽지 않고 되판 게 분명한 그 '헌책'엔 미카엘 엔데의 단편집이나 토마 귄지그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에 나올 법한 - 이책을 내게 빌려 준 진희 누나, 아직 내가 잘 가지고 있다오. 언제 돌려주러 꼭 갈게 - 재미있고 낯선 단편들이 그득했다. 그리고 근 일 년 새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열광금지 에바로드> 등 그의 소설들을 몇 권 더 읽었다. 


그의 소설은 어떤 것은 기획기사 같았고 어떤 것은 르포 같았으며 또 어떤 것은 새로운 문체를 시도하는 예술가의 작품처럼 보였다.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잘 읽히고 나름대로 재미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지런한 작가라는 신문기자나 평론가들의 평 또한 또 하나의 공통점이 될 정도로 그는 열심히 쓰고, 쓴 날짜와 글의 양을 엑셀에 기록하고 그 성실성을 연료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굵직굵직한 공모전들을 좇아다니며 상금을 획득했다. 소설가라는 지위를 폼 잡는 엔터테이너나 고뇌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철저한 생활인으로 포지셔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이요 결과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에세이집을 냈다. 제목은 <5년 만에 신혼여행>.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서 5년 만에 신혼여행을 갔다 온 3박5일간의 기록이다. 제목만 들으면 뒤늦게 신혼여행을 갔다 온 어느 커플의 알콩달콩 여행기일 것 같지만 장강명이 그렇게 알록달록하기만한  글을 쓸 리가 없다. 물론 소재가 신혼여행이니 어떻게 아내를 만나고 연애했는지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결혼 전의 에피소드들, 작가가 되기 전의 고군분투들이 재밌다. 그리고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틈틈이 펼쳐지는 결혼식에 대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화해에 대한, 직장생활과 꿈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들이 드러나는 대목들이 흥미롭다. 역시 장강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장강명은 실용주의자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간다. 에둘러 가느라 글의 양을 늘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주장을 기술한 부분들은 직접 옆에서 귀로 듣는 것처럼 명료하고 통쾌하다. 그런데 정작 여행지에 가서 관광을 하고 음식을 사 먹고 한 부분은 별 재미가 없다. 아마도 여행지가 긴장감이나 새로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보라카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원래 계획했던 터키 이스탄불이나 일본 대신 거길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다. 가난한 부부의 형편에 맞게(또는 늘 비용 대비 효용으로 고르던 그 커플의 버릇대로) 고르다 보니 거기가 된 것일 뿐. 두 사람이 어찌나 싸구려 상술과 바가지 요금에 시달렸던지 마지막엔 둘 다 "이 놈의 보라카이..." 하며 이를 간다. 그러나 상관 없다. 우리는 보라카이라는 나른한 관광지 덕분에 소설가 장강명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대충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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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꿈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대통령'이라고 대답하고 정말 싱겁게 대통령까지 궤도수정을 한 번도 안 하고 달린 사람은 김영삼 하나로 충분하다. 다들 어렸을 적엔 얼토당토한 꿈을 꾸기 마련이지만 철이 들면서 자신의 능력이나 집안 사정, 사회적인 분위기 등등에 따라 순차적으로 그 꿈을 수정하기 마련이고 그게 세상 살아가는 이치다. 그런데 여기 사뭇 다른 이유로 어린 아이들이 눈물을 머금고 꿈을 바꿔야 하는 직종이 생겨나게 되었으니 바로 언론인이다. 기자나 앵커 등 정상적인 언론인을 꿈꾸는 건 자유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그 직종의 노후 전망을 어둡게 하는 부정적 요소가 또아리를 틀게 된 것인데 이름하여 김영란법이다.

도대체 김영란은 누구더냐. 그는 여성이며 전 대법관 출신의  수퍼 엘리트'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대법관을 지낸 변호사는 3년 안에 100억을 버는 법조재벌이 되는데"(박찬종 변호사의 칼럼) 굳이 그걸 포기하고 어느날 홀연히 나타나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받아먹지 말라 미친듯이 외치고 있으니 동업자들 사이에서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놓은 잔칫상을 같이 엎어버리자는 ‘상 또라이'인 것이다. 법조계를 출입하던 뜻있는 기자들도 입을 모아 이건 아니라고 분연히 들고 일어났으나 아뿔싸, 계속되는 폭염에 잠깐 더위라도 먹은 건지 믿었던 헌재마저도 며칠 전 합헌 결정을 내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발의되었던 이 법이 언론계로 불똥이 튀면서 기자 사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8일 한국기자협회는 대한변호사협회 등과 함께 제기한 ‘김영란법’ 헌법소원심판 합헌 결정에 대해 ‘비판언론 재갈물리기 악용 안 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무엇보다도 권력이 김영란법을 빌미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릴 가능성을 경계한다”고 밝혔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고위층이 힘 대신 ‘신고나 고발조치'를 통해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릴 것이라는 기발한 착상이다.


그들은 말한다. "엄연히 민간영역에 속하는 언론이 공공성이 크다는 이유로 ‘공공기관’, ‘공직자’로 규정되고 언론활동 전반이 부정청탁 근절을 위한 감시와 규제 대상이 되는 상황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라. 언론고시를 통해 사회에 나왔는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졸지에 공직자 신분으로 바뀌게 된다니 열 받을 만하지 않는가. 더구나 감시자에서 감시를 당하는 사람으로 입장이 뒤바뀐 기자들로서는 당연한 권리 주장인 것이다. 


큰일이다. 원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김영란법이 우리 기자들의 취재를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되고 말았으니. 당장 기자들은 이제 어디 가서 점심을 먹으며 친한 소식통들과 얘기를 나눌 것인가. 더구나 '어디 가면 무슨무슨 식당이 맛있고 거긴 좀 비싸지만 어차피 우리가 돈 내는 거 아니니까 걱정할 것 없이 골고루 시켜 천천히 맛을 음미하라’는 식으로 후배들에게 전수하던 취재요령조차 사라지게 되었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란 말인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2016년 7월 29일 jtbc ‘뉴스현장’에 출연해 “기자가 취재원 등 업무관련자와 식사할 때 접대비용 3만 원의 상한선을 두는 것은 대단히 비현실적”이라며 “정치인과 언론인, 정치인과 민원인 등 이해관계인들이 방에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할 얘기가 있는데 3만 원으로 식사하려면 별도 방에선 거의 불가능하고 다중이 쳐다보는 홀에서 먹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5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논설위원이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구체적인 설명이라 좀 쪼잔한 감이 없지 않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다. 도대체 일반 홀에 앉아 사람들이 쳐다보는 상황에서 고위 공직자나 기업 입원들일 게 뻔한 취재원들이  어찌 기자들과 서로 깊은 속내를 털어놓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람들에겐 ‘파티션(칸막이)’은 기본이다. 예쁜 여종업원들이 서빙을 하느라 바쁘게 왔다갔다 하면 점잖게 불러서 만 원짜리 두세 장을 손에 꼭 쥐어주고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 잠깐 자리를 비켜달라’고 쉴드를 쳐야 대화 분위기가 잡히는 법이다. 이런 걸 그들은 하나도 모른단 말인가. 

농민들도 걱정이다. 그동안 5만 원 넘는 뇌물용 농산물을 양산해 옴으로써 생계를 유지해 온 대한민국의 특산물 농가들은 이제 누굴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한미FTA로 망해, 김영란법으로 망해, 정말 살 수가 없다. 김진 위원은 3만 원 이상 식사를 해도 ‘더치페이’하면 되지 않느냐는 앵커의 물음에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부 다 영수증 처리한다면 언제, 누구를 만났는지 다 적어내야 할 것 아니냐”며 “5만 원 정도에서 공무원들의 자유재량을 확보해 줘야 세상일이 돌아간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훤히 볼 수 있는 홀 테이블에 앉아 전에부터 잘 알던 고위공직자와 만나 형님, 잘 지내셨어요? 응, 니 덕분에 변비가 좀 나았어. 같은 알맹이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김진 논설위원을 상상하고 있자니 가슴이 아파 온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4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를 차지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아직 더 부패할 여유가 남아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취임 당시 언급했던 지하 경제 측면에서 보더라도 언론계의 공짜 점심은 그 방면의 금맥이다. 철모르는 대법관 출신의 망발로 인해 대한민국의 언론계가 위축되고 한 해 10조 원이 넘는다는 재계의 접대비 문화가 사라지는 꼴을 더 이상은 볼 수 없다. 나 혼자라도 김영란법 퇴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할 순간이다. 

정부는 연 10조 원 규모의 접대문화를 훼손하는 김영란법을 당장 폐지하라!! 
정재계는 기자들의 복지를 위협하는 '반김영란법 펀드'를 당장 조성하라!!
김영란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당장 변호사를 개업해서 전관예우를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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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다. 어머니는 의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다. 간호대학에 들어간 후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국문과 친구들의 강의를 대신 듣기도 하고, 과제를 대신 써주기도 했다. 그러다 최초로 나를 눈여겨봐준 선생님을 만났다. 원래는 전남대 교수님이었는데 5.18 때 해직을 당하는 바람에 우리 학교에 출강하게 됐고, 두 학기 동안 '교양 국어'를 가르치셨다. 아마 중간고사 때였을 것이다. 우리는 시험지 대신 백지를 받았고, 멍한 심정으로 교수님이 칠판에 '얼굴'이라고 쓰는 걸 쳐다봤다. 그게 시험문제였다. 글을 쓰든지, 그림을 그리든지, 너희들 맘대로 해보라. 50분 만에 백지 앞뒷면을 빽백하게 채웠다. 일주일 후, 교수님이 부르더니 대뜸 '습작노트 가져와봐' 하셨다. 그런 게 있는지 여부도 묻지 않는 걸 보면, 있다고 짐작하신 것 같다. 짐작대로, 그간 친구들을 대신해 쓴 과제물이며, 독후감, 산문 같은 걸 써둔 노트가 있어 가져다드렸다. 부끄럽긴 했지만, 내 글을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났을 때, 교수님이 다짜고짜 물었다. 국문과롤 전과할 마음이 없느냐. 어머니가 반대한다고 말씀드리다가 하마터면 울 뻔했다. 생긴 건 이래도 눈물이 꽤 많은 편이라...
그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나긴 세월 동안 나 자신을 믿는 근거가 되었다. 문장을 잘 쓰는 학생들은 수없이 봤지만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아이는 처음 봤다고 했다. 포기하지 말고 아주 잠시만 꿈을 접어두라고 하셨다. 나중에 작가가 되면 나를 한 번 찾아오라고도...내가 작가가 되었을 땐 이미 작고하셨다. 

- Axt 2007년 8월호 인터뷰 중에서 


* 오늘 정유정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눈물이 찔끔했다.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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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국민의 99%는 개나 돼지와 같다”라는 발언 덕분에 인간의 가치가 그리 높게 느껴지지 않을 때 마침 <곰의 아내>라는 연극을 보았다. 왜 '곰의 아내'냐 하면 주인공인 소녀가 어느날 산에서 발을 다쳐 길을 잃었다가 곰을 만나 그의 새끼까지 낳고 살게 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자살을 하려던 한 남자를 구해주게 되는데 그에게 자신이 곰의 아내였으며 자신의 새끼를 사냥꾼이 죽여버린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사라진 곰 대신 그 남자와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새롭게 아이를 낳고 살게 된다. 다분히 신화적인 이야기이다. 일단 곰이 나오니 우리의 단군신화나 웅녀 생각부터 떠오른다. 


남산예술센터는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 이어 두 번째로 온 곳인데 원형강의실처럼 구성되어 있어 무대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최소한의 효과만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심플한 시스템이라 올때마다 기분 좋은 극장이었다. 객석도 입식좌석을 고정시켜 놓은 형태라 공간 낭비가 적고 편안하다. 물론 내가 연극 공연 도중 무심코 발을 좀 길게 뻗었다가 앞에 앉은 여자 관객의 옆구리를 건드리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말이다. 


영화 <화장>과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열연했던 배우 김호정의 호연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다만 팜플릿의 인삿말에서부터 작가와 연출의 변이 서로 부딪히는 것을 읽게 된다는 건 안쓰러운 일이었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수많은 곰아내들이 있습니다"라고 쓰며 이는 곧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동굴 속으로 들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자신도 수 많은 곰아내 중의 하나였다가 연극을 하고 글을 쓰며 무사히 걸어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래 쓴 희곡 <처의 감각>이 아니라 각색된 대본 <곰의 아내>로 공연을 하게 된 점이 대해 송구한 마음이라고 썼다.


작가가 '곰의 아내'라는 것을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로 읽은 것에 비해  연출가 고선웅은 함께 살기 시작한 남자가 생활의 짓눌려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고 여자도 결국 이전에 같이 살던 곰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에 촛점을 맞춘듯 하다. 이는 세계관에 대한 충돌이다. 작가는 신화적 해석을 하는 반면 연출가는 이 모든 과정을 '샐러리맨의 딜레마' 정도의 메타포로 좁히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극은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하고 공허하게 흘러간다. 작가의 의도대로 공연이 되었으면 훨씬 더 단단한 장면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내도 <처의 감각>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이 연극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나 연출 둘 다 쟁쟁한 경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그래서 어느 사람이 옳다고 말할 순  없다. 더구나 예술은 '타협'의 세계가 아니다. 다만 극단 '마방진'의 특징이라고 하는 과장된 톤과 문어체 형식의 대사를 조금 더 살려서 가슴 뜨거운 장면들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마지막에 진짜 곰이 잠깐 출현하는 키치함 대신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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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운 하늘색 웃도리를 입은 서현진이 식탁에 앉아 입이 미어터지도록 밥을 밀어넣으면 그 위로 '엄마의 마음이 놓이는 장면'이라는 자막이 뜬다. 옆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 맛있니?" 계속 숟가락에 묻은 밥알을 핧아 먹으며 "어...!"라고 대답하는 서현진. 카메라가 밑으로 내려가면 그녀가 먹는 밥의 정체가 보인다. 햇반이다. 그것도 미처 밥공기에 덜지 못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것 그대로 퍼먹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얘 엄마는 뭐하느라 굶고 들어온 딸년 밥 한 공기 못 해먹이고 햇반 뜯어먹는 걸 옆에서 쳐다보며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는 걸까. 


나도 광고를 만드는 사람인데 남이 만들어놓은 광고를 헐뜯으려고 이런 글을 쓸 리가 없다. 더구나 이 광고는 아주 잘 만들어진 광고다. '마음이 놓이다, 햇반이 놓아다'라는 카피도 질투날 정도로 좋고 바스트샷 카메라를 압도하는 요즘 '대세' 서현진의 찰진 연기도 만점이다. 다만 그녀가 먹고 있는 밥이 문제다 햇반은 밥이 아니다. 카피처럼 '갓 짓은 밥맛'이긴 하지만 이건 알고보면 가짜다. 심지어 밥알도 진짜 밥알이 아니고 지어진 밥을 으깨어 다시 밥알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내가 하려는 얘기는 밥이 중요하다는 얘기고, 마침 고은정의 <반찬이 필요 없는 밥 한 그릇>이라는 책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므로 그 책의 유용함에 대해 소개하려는 것이다.


고은정은 약선 식생활연구센터 소장 겸 우리장 아카데미 대표다. 지리산 뱀사골 근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기도 하는 음식문화 운동가다. 한 마디로 요리 연구가가 아니라 음식 연구가인 것이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보다는 우리 몸에 좋은 음식 얘기를 많이 하고 음식 밑에 깔려 있는 인문학적 통찰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맛이 없어도 몸에 좋으니 참고 먹으라는 막무가내식도 아니고 우리 음식이 무조건 좋다는 식의 국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밥'에 대한 책을 냈다. 냄비나 압력밥솥 또는 전기밥솥에 쌀 씻어서 안치면 저절로 되는 게 밥인데 뭘 새삼스럽게 책을 다 냈을까. 


밥은 쌀과 물과 불이 만들어내는 삼중주의 예술품이다. 하지만 재료가 너무 단순한 탓인지 오히려 맛있는 밥맛을 구현해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재료뿐만 아니라 조리법조차 단순하여 밥맛 내기의 어려움에 한몫 거든다.


 위의 글처럼 이 책은 재료 뿐 아니라 조리법초차 간단하여 밥맛 내기에 어려움이 있음을 바탕에 갈고 들어간다. 그러면서 제대로 '요리'된 밥 한 끼가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하게 하는지를 역설한다.  


우리의 밥도 다양한 재료와 결합하면 더 맛있어진다. 철마다 나오는 싱싱한 채소나 감칠맛 고는 해물들을 쌀과 같이 넣고 밥을 해 먹거나 조금 더 기분을 내고 싶은 날엔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를 넣고 같이 밥을 해 먹으면 밥도 요리가 된다. 흰쌀밥을 할 때 갖게 되는 반찬의 부담감을 밥 하나로 다 날릴 수 있으니 자꾸 밥을 해 먹고 싶어진다. 밥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맛있는 밥을 집에서 해먹는 것. 거기엔 밖에서 아무리 비싼 요리를 사먹더라도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기쁨과 충만함이 있다. 그리고 보온밥통에서 꺼내먹는 이름만 '더운밥'인 보온밥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이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매끼 새로 밥을 해서 먹을 수 없게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전기를 이용해 보온을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밥 짓는 수고를 힘들어하고 밥을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보온의 기능이 담긴 밥솥이 처음 들어왔을 때의 놀람과 기쁨을 잊지 못하지만 그건 정말 잠시였다. 수고를 덜고 시간을 벌었지만 밥맛을 놓쳤기 때문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한 이 대사 한 마디가 이렇게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될지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누구나 생래적으로 느끼는 삶의 본질을 건드린 대사라서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만큼 우리에겐 한 끼니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당장 김한길의 에세이 [아침은 얻어먹고 사십니까]나 김훈의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들춰보시라. 이 책들은 제목에서부터 우리의 삶이란 밥에서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도 처음 자취생활을 시작할 때 밥하는 법이 적혀있는 요리책을 산 기억이 있다. 요즘 영화 <곡성> 때문에 뭣이 중한디? 라는 말이 유행이다. 나는 정말 중요한 건 밥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제목이 '반찬이 필요없는 밥 한 그릇'이다. 그렇다고 맨밥을 먹으라는 게 아니다. 쌀을 잘 고르고 재료의 성질을 잘 이해하면 누구나 가장 소박하면서도 알찬 한 끼를 영위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책값이 만 원이다. 내가 가끔 가는 을지병원 뒤 평양면옥의 냉면 한 그릇 값인 만천 원보다 싸다. 지금 친구에게 냉면 한 그릇을 사주면 하루 고맙다는 소릴 듣겠지만 오늘 그 친구에게 이 책을 한 권 선물한다면 그는 아마 몇 년 동안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너무나 간단하고도 중요한 행복의 방법을 선물해 주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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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서 문정희 시인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 시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좋아하던 시 '남편'을 다시 찾아 읽게 되었구요. (구글에 '문정희 남편' 이렇게 쳤더니 탤런트 겸 배우 문정희의 남편 스펙이 좌르르 뜨더군요)


저는 이 시를 참 좋아하는데, 특히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도 제일 먼 남자'라는 구절이 정말 좋습니다. 귀여운면서도 넉넉한 시인의 풍모와 유머감각이 그대로 드러나죠. 


오늘 저녁엔 텅빈 회사 사무실에서 이 시 한 편 읽고 혼자 빙긋 웃었습니다. 좋아서요.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도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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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286331



퀀텀닷 초밀도 화질로 

보이지 않았던 움직임 

숨어있던 땀방울까지 - 


새로 나온 S사의 SUHD TV광고를 보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수천만 원을 주고 새 TV를 사서 저렇게 초밀도로 봐야할 일이 과연 존재하는 걸까.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들도 믿지 못해 다시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확인하려 들면서 말이다. 


특정 회사의 제품이나 광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오히려 매우 잘 만든 광고다). 다만 매 순간 첨단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소비자의 삶이 어쩐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짧은 글을 남겨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흑백TV를 보던 때 상상력이 더 풍부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기술의 발전이나 삶의 풍요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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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메모처럼 짧은 독후감을 쓰는 경우가 있다. 

정세랑의 경우가 그랬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랬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메모와 오늘 쓴 두 줄을 붙여보았다. 

나중에 진짜 쓴다니까. 


1

정세랑의 <이만큼 가까이>를 읽고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 이어 두 번째 책인데 이 책도 정말 사부작사부작 잘 읽힌다. 창비 장편소설상을 탄 작품인데 소재나 인간관계와는 상관없이 그냥 글을 잘 써서 받은 상이 틀림없다. 전에 소설가 장강명이 페이스북에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엔터테인먼트 소설은 한 이십만 부는 팔려야 한다'고 쓴 적이 있는데, 맞는 말이다. 심윤경에 이어 요즘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작가다. 개인적인 소회를 얘기하라고 하면 예전에 계간지 [판타스틱]에서 그녀의 데뷔작 <드림,드림,드림>을 읽고 꽤 좋은 작가네, 하고 생각했던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2

온수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정세랑의 <이만큼 가까이>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다(인천인하대병원으로 문상 가는 길이다). 영화 <세인트엘모어의 열정>이나 <위노나 라이더의 청춘스케치>를 2016년 파주 버전으로 읽는 느낌이랄까. 주인공이 영화미술감독으로 나오는데 틈틈히 친구들과 가족을 찍었던 화면들을 이어붙여 단편영화로 만드는 장면이 뒷부분에 나온다. 다 읽고나니 그 영화가 보고싶어진다. 애틋하고 재미있고 따뜻할 것이다.


3.

시간 내서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에 대한 독후감을 써보고 싶다. 사실은 읽은 직후 몇 줄을 써놨는데 그리고는 일에 치여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책은 정말 재밌다. 케이블TV에서 드라마로 제작을 결정하고 작가에게 후속작을 쓰라고 하면 거뜬히 다섯 편은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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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285210



2016년 봄,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인공지능과 사람의 최초 대결이었으니까요. TV와 인터넷으로 대국을 지켜본 저희들은 마침 한국방송공사에서 공모하는 <경쟁위주 사회문화> 공익광고 모델로 이세돌 씨가 적역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에 그보다 더 큰 경쟁을 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고 시안을 공모전에 보내기 전에 이세돌 씨 측에게 연락해 공익광고의 취지를 설명하고 출연 허락을 구했습니다. 이세돌 씨는 지나친 경쟁위주의 사회문화를 진단하고 반성해 보자는 저희들의 생각을 단박에 이해하고 무료 출연까지 약속해 주었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고마운 일이었죠. 이세돌 씨의 약속에 힘입어서 그랬는지 저희들의 아이디어는 무사히 공익광고 본선을 통과해 당선작이 되었습니다.


막상 이세돌 씨가 공익광고 모델로 정해지고 나니까 저희회사는 물론 한국방송광고공사 담당자들도 다들 욕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광고를 만들자는 하얀 욕심이었죠. 그래서 다시 머리들을 모았습니다. 카피를 새로 쓰고 회의를 거듭 했습니다. 


마침 우리 회사 막내 카피라이터가 자신이 듣고싶은 이야기라며 쓴 '경쟁에서 이기라는 말보다는 넌 이미 잘 하고 있어, 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카피가 좋아서 그걸로 최종 안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촬영장에 가서 이세돌 씨에게 경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진 뒤 그 이야기들을 모으고 골라서 한 편을 더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촬영장소는 상수동의 '이리카페'였습니다. 


조금 위험한 결정이었죠. 그런데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저희가 미리 여섯 가지 정도의 질문을 작성해서 가져가긴 했지만, 역시 이세돌은 그냥 이세돌이 아니었습니다. 경쟁에 대한 남다른 이해력과 통찰력이 있었고 대인배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세돌 어록'이 괜한 말이 아니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명카피들이 그의 입에서 마구 흘러 나왔습니다. 공익광고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결국 이세돌 9단이 출연한 공익광고는 A안, B안 이렇게 두 편으로 온에어가 결정되었습니다(오늘은 A안만 보이더군요. B안도 지켜봐 주십시오). 


'지금 우리는 지나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희가 공익광고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 한 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세돌의 입을 통함으로써 더 큰 공감과 파급력을 얻은 듯합니다. 물론 지겨운 경쟁사회를 반성해보자는 뜻으로 기획된 이 광고 역시 치열한 '경쟁PT'를 통해 뽑히고 만들어졌다는 점이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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