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차라리 니가 나가 죽었으면 좋겠어>

어떤 여자분이 시집 오기 전에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당시 주인집 아들에 의해 저질러진 강간이었다. 그 과정은 계획적이었고 모질었으며 끔찍했다. 그러나 그 여인은 힘이 없었다. 오래 전 일이었고 또 먹고 사느라 바빠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채 그냥 참고 살아야 했다. 남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주인집이 두려워서인지 원래 자존심이 없어서인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십 년이 지난 어느 수요일인가부터 그 여인은 가해자 집앞에 가서 사과를 요구하기로 했다. 쩨쩨하게 돈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네가 잘못했음을 동네 사람들 앞에서 깨끗이 인정하고 반성문을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당시 돈을 벌고 싶어 자진해서 주인집 아들에게 강간해 줄 것을 부탁했던 것이라는 헛소리가 그 집안 사람들 입에서 흘러나왔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그 여인은 그 후 매주 수요일이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집 앞에 가서 사과를 요구했다.

그 여인의 사연은 곧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져 많은 공분을 사게 되었고 반상회에 안건으로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조소과에 다니는 어떤 미대생은 그 여인이 강간을 당하던 당시 나이 즈음의 모습을 조각상으로 만들어 그 놈 집앞에 세워놓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12월이 다 끝나갈 즈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여인의 아들이 그녀에게 말도 안하고 가해자에게 쪼르르 달려가 지난 일은 다 잊기로 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 일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모친이 그게 무슨 미친 개소리냐고 소리를 질렀더니 "엄마, 이제 대승적 차원으로 생각하셔야 해요. 아세요?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한자로 쓰면 '비가역적'이 되거든요? 깔끔하게 합의를 다 끝냈는데 이제 와서 엄마가 이러시면 아들 입장이 뭐가 돼요." 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용돈으로 십만 엔 정도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놈 집앞에 세워놓은 소녀상도 이제 어디다 좀 치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 엄마가 강간 당한 일을 왜 엄마한테는 알리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가서 합의랍시고 하고, 또 왜 그렇게 서둘렀냐는 질문엔 '앞으로는 그놈이랑 힘을 합쳐 사이 좋게 지내야 옆동네 중국집 배달하는 형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이장 아저씨가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왔다는 뒷얘기를 털어놨다. 덕분에 주인집 아들은 '12월 28일에 모든 합의를 끝냈으므로 이제 앞으로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어길 시엔 그 여인과 그 집은 이 동네에서 끝'이라는 협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엄마 눈에 피눈물이 흘렀다.
이런 걸 자식새끼라고.

슬프고 허무했다. 이제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그 여인은 아들이 받아온 돈다발을 풀어 지폐를 박박 찢어서 병신 같은 자식의 얼굴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난 차라리 나가 나가 죽었으면 좋겠다. 이 쓸개 빠진 개새끼야.


Posted by 망망디
,




아직도 에쁜고 젊은 얼굴과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마흔세 살의 히사코.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이자 두 고등학생 아이의 엄마인 남부러울 게 없는 그녀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가자는 남편의 제안이 영 달갑지 않다. 해마다 크리스마스면 벌어지는 가벼운 실랑이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이 둘 다 스키 캠프로 떠난 참이라 처음으로 둘 뿐인 사진 나들이인 것이다. 알 수 가 없다. 늘 자신을 사랑해주고 장모님까지 극진하게 모시는 ‘굿보이’지만 정작 그녀는 한 번도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 그녀의 가슴 속엔 이십 년 전 파리 유학시절에 잠깐 함께 살았던 남자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몽마르뜨 언덕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보잘 것 없는 화가 지망생이었다. 지나간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움으로만 남는 법. 히사코는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사진 취미도 포기하고 사업에 매진했던 남편의 사랑이 오히려 버겁기만 하다. 그리고 자신을 렌즈에 담으려는 남편의 성의가 부담스럽다.


삼각대를 세운 남편이 무심코 마로니에 얘기를 꺼냈을 때 그녀는 이미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사진을 찍히지 않으려 렌즈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히사코에게 “뒷모습도 괜찮지만”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기어코 눈물을 터뜨린다. 지난 이십 년 간 단 한 번도 남편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고 거짓말로 살아온 자신이 미워서다. 히사코는 남편에게 말한다. 나 할 얘기가 있어요. 무슨 얘기라도 다 들어준다고 약속해 줄래요? 그래,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무슨 얘길 하든 어머니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또 내게도 변함없는 차코(히사코의 애칭)로 남는다고 약속해줘. 알았어요. 나 처녀 시절 파리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당신을 만났을 때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어요. 아이를 지우고 당신과 결혼했지만 그 후로도 이십 년 간 그 사람만을 그리워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나 바보처럼 모든 걸 이해하고 안타깝게만 받아들이며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믿고 있는 이 남자를 믿는 것만큼 사랑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게 그런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다. 그들이 접어든 초상화 거리에서 이십 년 전 그 남자를 만난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얼굴이 변해도 화풍만은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녀는 예전에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다. ‘초상화 오 분 완성’이라는 안내문을 사이에 두고 단박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 커피를 사러 갔던 남편은 두 남녀의 표정과 대화를 통해 이십 년 전 그 남자임을 직감하고 말한다. “와이프인데 잘 부탁해요. 오 분 이상 걸려도 좋으니까 젊게 그려주세요.”


신기하게도 그가 그린 초상화는 마흔세 살의 히사코가 아니라 스물세 살의 히사코다. 단박에 이십 년을 가로지르는 슬픈 만남이다.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에나 가능한 이야기랄까. 남편은 남자에게 자기 아내와 식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자신은 커피를 마시고 있겠다며. 눈물겹고 신파스러운 배려다. 그러나 그 부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자가 질척거리지 않고 그림값 이천 엔을 요구하더니 미련 없이 일어섰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라지고 다시 사진을 찍는 두 사람. 이번엔 히사코가 촬영에 아주 협조적이다. 히사코가 남편에게 부탁을 한다. 방금 받은 그림과 남편이 오늘 찍은 사진을 사무실에 나란히 걸어 달라고. 스물세 살의 히사코는 마흔세 살의 히사코를 결코 이길 수 없을 거라며. 이젠 아무 것도 거리킬 것이 없다. 거리에서 남편의 입, 볼, 턱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입을 맞추는 히사코. 바보 같이 이십 년이나 걸려 남편에 대한 사랑을 찾았다. 마침 크리스마스의 일이다. 아시다시피 크리스마스 이브는 매우 특별한 날이니까.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신파스럽고 복고적이지만 스토리텔링의 균형감각은 세계 최고다. 나는 세상이 가끔 살벌하게 느껴지거나 따스함이 그리워질 때 그의 단편을 하나씩 꺼내 읽는다. 그의 <수국꽃 정사>를 처음 읽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리면서도 좋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샐러리맨 같은 무사 이야기를 다룬 눈물나는 장편소설 <칼의 지다>를 읽은 뒤 완전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영화 <파이란>의 원작자도 아사다 지로다(원작은 <러브레터>). 그의 글은 어떤 소재를 다루든지 쉽게 읽힌다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무시하지 말자. 스티븐 킹이 대중작가라고 무시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모두 스티븐 킹에게 무릎을 끓었다. 서점에 나가 베스트셀러들을 잠깐 살펴면 이건 나도 쓰겠다, 싶은 어이 없을 정도로 쉽고 얄팍한 책들이 많을 것이다. 그걸 보고 한심한 세태니 인스턴트 시대라 그렇다느니 한숨 쉬며  탄식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쉽게 읽힌다고 아무 책이나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아니다. 책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없으면 절대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모르면 쉽게 쓰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역시, 결론은 어이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쉬운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

https://www.youtube.com/watch?v=VilRHLu6K4k


https://www.youtube.com/watch?v=wuz2ILq4UeA


https://www.youtube.com/watch?v=V6-0kYhqoRo


https://www.youtube.com/watch?v=hjBZoOs_dXg




올 해 본 크리스마스 광고는 'John Lewis'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구약성서를 패러디한 'Mulbery' 광고가 있었네요. 진지한 유머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Stevie Wonder와 Andra Day가 'Someday At Christmas' 부르는 아이폰 광고도 참 좋죠?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꾸며내고 급하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EDEKA 광고는 개인적으로 좀 싫군요. 여러분은 어떤 광고가 마음에 드세요? 


어떤 힘든 일이 있든 가슴 아픈 사연이 있든 어쨌든,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이길 빕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길. 연말이잖아요. 




Posted by 망망디
,

강소라가 나오는 전자책 '리디북스' CM을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말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건 스마트폰 때문이 아닐까? 눈만 뜨면 스마트폰부터 켜보는 나. 깜깜한 방안 침대 위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아내. 사실 스마트폰의 '스마트'라는 단어는 학생복 브랜드 스마트만큼이나 우리랑 상관없는 거 아닐까. 


그러다가 머리에 떠오른 구절이 '스마트폰이 없으면 정말 스마트해질 텐데' 였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제 마음대로 전자책 광고 카피를 한 번 써봤습니다. 왜 썼냐구요? 그냥 써봤습니다.

 


<스마트폰을 바꿨더니 정말 스마트해졌다>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던 나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예전엔 책을 참 좋아하던 나였는데... 


책을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전자책을 샀다


리디북스


스마트폰을 바꿨더니 

정말 스마트해졌다


전자책은 리디북스



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268740

Posted by 망망디
,





토요일 아침, 무한도전 재방송에 푹 빠진 아내.


'혜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탠리 큐브릭을 존경하는 아내  (2) 2016.02.29
아내가 곁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  (0) 2016.02.18
근황  (0) 2015.06.26
무장해제  (0) 2015.01.04
혜자? 이름도 참 예쁘네!  (0) 2014.10.24
Posted by 망망디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205&artid=201512112036545


가끔 휴일 새벽에 일어나 남의 글을 천천히 읽는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일어나는 갈증 때문이다. 오늘 읽은 글은 조간신문에 실린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의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이라는 책 소개 글이었다. '심오하게 종교적인 비신앙인(deeply religious non-beliver)' - 나는 크리스찬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종교에 접근하는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존경한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신다. 나는 다시 잠들 것이다. 


예수는 급진적인 혁명가였다. 어떤 지배계층도 예수 같은 인물을 곱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는 허탕만 치던 어부 시몬에게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라라고 말한다. 고기라곤 잡아본 없는 듯한 샌님의 말이었지만, 시몬은 그의 말대로 갈릴리 한가운데로 향한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많은 고기가 낚인다. 시몬은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고 예수의 가장 충직한 제자가 된다.

예수는 베드로의 지갑을 두둑하게 하거나, 신통력을 발휘해 마음을 사로잡으려 것이 아니다. 예수의 말의 그리스어 원문은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 해석된다. 이는 제한구역, 따분한 일상을 넘어 탈출하라는 속삭임이다. 마치 <노인과 바다>에서 84일간 마리도 잡은 노인이 다른 어부들이 가지 않는 파도가 높고 물살이 빠른 해협까지 나간 것과 비슷하다. 예수는 어제와 같은 , 익숙한 자신으로부터 탈출할 것을 선동하고 있다.


Posted by 망망디
,



야근하는 목요일, 같이 술 마시자 꼬시는 친구들의 카톡방을 나오며. 

'짧은 글 짧은 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의 삶  (0) 2016.03.04
별똥별  (0) 2016.02.05
자백  (0) 2015.12.01
우연  (1) 2015.08.04
할리 데이비슨  (0) 2015.05.07
Posted by 망망디
,

자백

짧은 글 짧은 여운 2015. 12. 1. 15:02



자백



어려서는
학교 가기가 싫었고
커서는
회사 가기가 싫었다

학교 다닐 땐
공부를 잘 못했고
회사 다닐 땐
일을 잘 못했다

유흥비를 벌면
놀 시간이 없었고
놀기 시작하면 
유흥비가 곧 떨어졌다

그래 뭐
어떻게든 되겠지
돈은 없지만
마음만은 부자다,

라는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다







 

 



'짧은 글 짧은 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똥별  (0) 2016.02.05
사소한 저주  (0) 2015.12.10
우연  (1) 2015.08.04
할리 데이비슨  (0) 2015.05.07
비틀즈의 인 마이 라이프  (0) 2015.02.11
Posted by 망망디
,

예전에 제 친구 민석이와 민석이 여자친구,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연신내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민석이가 화장실 간 사이에 민석이 여친은 제게 민석이와 사귀기로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에 대해서 얘기해줬습니다.  


그때 민석이가 일을 쉬고 잠깐 놀 때였는데, 어느날 이 여자가  민석이네로 전화에서 민석 씨를 찾았더니 어머니가 "민석이, 요 앞에 만화가게 갔는데?"라고 말씀하시더란 것입니다. 서른이 넘은 아들이 엄마에게 만화가게 간다고 무심히 애기하는 것도 그렇고, 아들 만화가게 갔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친구한테 전해주는 엄마도 그렇고. 그 순간 그 집이 너무 마음에 들더라는 것입니다. 


휴대전화도 별로 없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눈이 오는 날이라 별 게 다 생각이 나나봅니다. 그래서 그 둘이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냐고요? 에이, 그건 또 아니죠... 민석인 지금도 혼자 사는데.


Posted by 망망디
,

토요일이었던 어제, 회의를 하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김건익 실장님과 함께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오늘 신문을 펼쳐보니 ‘조성진의 음악’을 위하여,라는 백승찬 기자의 칼럼이 나왔더군요. 


‘조성진이 국가의 영광을 위해 피아노치지 않길 바란다’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서 쿡 박혔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1202048565&code=990105





Posted by 망망디
,